베트남 항공기 추락사고 현장서 주민·구조대 합세 시신 옷까지 벗겨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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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인 21명을 포함, 모두 65명의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베트남항공 추락사건의 현장인 캄보디아 포첸통 국제공항의 4일 오후. 전날 대형참사의 원흉인 스콜 (열대성 소나기) 은 그쳤지만 잔뜩 흐린 하늘은 귀기 어린 모습이었다.

공항에서 남쪽으로 약 3㎞를 달려 도착한 사고현장 토마고 마을. 겨우 차 한대 빠져 나갈 정도로 좁은 비포장 도로는 시커멓게 타버려 흉측하기 짝이 없는 기체의 잔해 덩어리를 실어 나르는 트럭과 추락현장에서 돈이 될만한 것이면 뭐든지 챙겨 가려고 모여든 수백명의 주민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사고 직후 무려 5시간 동안이나 타올랐던 불길이 꺼지고 실낱같은 연기 또한 정오때를 지나면서 잦아들자 캄보디아사고대책반 대원들은 갈갈이 찢긴 기체의 잔해들을 나르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그 사이사이 고철수집에 정신이 없었다.

사고 당시 처음 기체꼬리와 충돌, 두 동강이 나버린 대추야자수가 뒹굴고 있는 지점에서 기체 앞부분 조종실의 잔해가 널린 곳 약5백m 전방까지는 곳곳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 그 추락의 강도가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케 했다.

그 웅덩이 속에서 대책반 대원들이 비교적 큰 덩어리의 잔해를 들어올리면 꼬마들을 비롯, 수백명의 주민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어 작은 고철을 챙기느라 무장한 군인들의 위협에도 아랑곳 않고 승강이를 벌였다.

사고현장에 바짝 다가서자 날카롭게 쏘아보던 경비군인들이 짧은 영어로 "No Entry (출입금지)" 를 외치며 길을 막았다.

"한국에서 온 기자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울고 있는지 아느냐" 고 되묻자 말없이 길을 비켰다.

잔해 속을 다니다 부피가 조금 큰 날개부분 앞에서 그만 발이 멈췄다.

한국인이 쓴 공책과 비상시 안전수칙이 적힌 책자가 불에 타고 그을린채 잔해 속에 파묻혀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잠시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이었다.

어렵게 몇자 확인한 결과 공책은 여행지의 일을 기록한 기행문같았다.

여행지의 마지막 기록이 화염에 휩싸일줄 누가 짐작조차 했을까. 한국인과 대만.베트남인등 시신 60여구가 안치된 칼메트 병원에서 만난 교민 60여명은 전날의 밤색작업에 이어 이날 낮 계속된 시신 수습으로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한국서 온 기자' 라고 소개하자 울분부터 토해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사고가 난지 30분쯤 지나 현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주민들이 사망자 사이를 누비며 귀중품을 약탈해가고 있었어요. 객지에서 사망한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 몸까지 발가벗겨진 동포의 시신을 보니 그만 너무나 분해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 재캄보디아 한인회 총무이사인 김문백씨는 아직도 분에 떨고 있었다.

또다른 교민 이원길씨도 "구조대원들중 일부도 주민들과 합세, 아직 숨이 붙어있는 희생자들의 주머니를 뒤져 여권과 보석을 챙겨가더라" 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프놈펜 도착 직후 접한 첫 소식은 "캄보디아 정부가 5일 하루를 애도의 날로 정하고 1분간 묵념을 올리는 사이렌을 울리기로 했다" 는 것이었다.

하나 가난에 찌든채 고철덩어리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 표정에서 그같은 애도는 한낱 의례적 행사에 불과할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프놈펜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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