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산다]농부로 변신한 전 치안정감 김상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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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찰 요직을 두루 거쳐 82년 경찰대학장을 끝으로 제복을 벗었던 김상희 (金嘗熙.69) 전 치안정감. 지난 61년 경찰에 첫발을 내딛은 뒤 소문난 원칙론자로 21년 동안의 경찰 생활을 마감한 金씨는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완전한 농부로 변해 있었다.

허름한 작업복에 황토흙이 잔뜩 묻은 농구화, 70년대나 볼 수 있었던 새마을모자를 쓰고 경운기를 몰며 밭을 일구는 것이 金씨의 요즘 모습이다.

전북전주에서 승용차로 40여분정도 가면 도내에서도 깊은 산골로 알려진 진안군부귀면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차량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산골길을 따라 1㎞쯤 가면 金씨가 사는 20평 남짓한 촌가옥이 있는 상거석마을이 나온다.

"당초 새마을 지도자가 꿈이었으나 농촌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시골 인심속에 농사를 직접 짓다 보니 이제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집사람과 함께 황혼의 신혼살림을 꾸미는 기분으로 제2의 인생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金씨가 농촌에 내려온 것은 지난 91년. 경찰생활을 마감한 뒤 농촌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서울에서 9년여동안 틈틈이 농사에 대한 공부를 한 뒤였다.

그러던 차에 친구로부터 이곳에 낡은 가옥과 1천여평의 밭이 매물로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향인 장수에서 가까운데다가 전북 경찰국장 시절 관내 시찰을 할 때마다 '산수가 좋고 환경보전이 잘 된 곳' 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던 곳이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옥과 밭을 구입한 金씨는 처음엔 이곳에 우렁쉥이 농장을 운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온이 낮아 생산성이 없다는 것을 안뒤 화훼류와 대추나무.배 등 과실수를 심었고 지금은 성공을 거둬 그 수확물로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金씨는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부인 김하연 (金夏蓮.65) 씨와 함께 직접 시장에다 내다 팔고 이익금은 농산물 신품종을 개발하는데 쓰고 있다.

요즘 金씨 부부는 과잉생산으로 판로가 막힌 마을 주민들의 고추를 팔아주기 위해 서울 생활 시절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주요 하루 일과. 金씨 부부는 그동안 이같이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처리하는 일을 도맡아 해옴으로써 이제는 마을주민들과 아주 친해져 매년 풍년을 감사하는 백중 (百中) 일과 모정 (茅亭) 준공기념일때 金씨가 직접 장구등을 치는등 주민들과 함께 신명나는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金씨는 또 매달 두번씩 주민들과 모여 이런 저런 마을 문제를 논의하고 주민들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면 옛 경찰후배들을 찾아다니는등 마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6년여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젊었을때 일에 쫓겨 터득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金씨는 "정년퇴직을 앞둔 후배들이 찾아오면 시골생활을 적극 권하고 있다" 고 말했다.

진안 = 서형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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