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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대기업 초임 깎아 협력업체 납품가 올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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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손경식 회장이 지난달 27일 대한상공회의소회관 20층 집무실에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손경식(70)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본지와 인터뷰 내내 “지금은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이를 잘만 극복하면 기업 체질이 튼튼해져 앞으로 일자리가 더 늘 것”이라며 “지금의 고통을 다 함께 나누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을 깎아 고용을 늘리겠다는 재계의 발표가 있었는데. 경제위기를 핑계로 대기업들이 임금 수준만 낮출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1월 취업자 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만3000명이나 줄었다. 대졸 초임을 깎은 것도 고용 악화를 막아보려는 재계 노력의 일환이다. 큰 틀에서는 근본적인 ‘임금 불균형’을 해소하자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 수준은 너무 높다. 일본은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70% 정도다. 우리나라는 60%에도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취업난 속에서도 중소기업은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잡 미스매치(고용 불균형)’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의 임금이 너무 낮아 안 가려고 하는 것이다. 국가 경제가 경쟁력이 있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잘돼야 한다. 최근 한 달간 지방 중소기업인들을 만났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기술력이 탁월하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몇 년을 타도 고장 나지 않는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건 중소기업들의 협력 덕분이다. 현재 재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차이를 좁히자는 큰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어떤 방식으로 줄일 것인가.

“앞으로는 창출된 이윤을 대기업 안에서만 배분하기보다 협력업체인 중소기업들에 나눠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납품을 받는 부품 가격을 더 쳐주면 그 이윤은 자연스럽게 중소기업 직원들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이 올라가 대기업과 임금 차가 줄어든다. 향후 경기 회복 효과를 중소기업이 먼저 누리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고용도 안정될 수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이 중소기업을 찾는 시대가 꼭 와야 한다. 그래야만 고용 불균형 현상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대기업 초임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임금 격차를 없애다 보면 전반적인 급여 수준이 낮아질 텐데.

“이번에 재계가 협의한 건 신입사원 초임에 한해서 낮추는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여분으로 당장은 고용 유지와 일자리 만들기에만 투자할 것이다.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전반적인 대기업 임금 수준이 현재처럼 다시 높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노동계와 어떤 협의를 진행하고 있나.

“노사민정(勞使民政) 합의가 있었는데 노동계는 임금에서 양보를 하고, 경영자들은 고용을 보장하자고 했다. 경제위기를 넘기기 위해 노사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의 일자리 나누기 방식이 너무 인턴에 치중해 있는 것 같다. 이들이 6개월이나 1년 뒤 인턴을 마치고 나면 다시 실업자로 돌아갈 수 있다. 임시방편적인 효과만 있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인턴을 거치고 난 이들에게 정규 신입사원 채용 때 가산점 혜택을 주면 된다. 장기적으로 이런 채용 방식을 정착시키면 좋을 것이다. 이미 이런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 중 상당수가 효과가 좋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실무 경험을 어느 정도 쌓은 이들을 뽑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데, 고용 유지 측면에서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게 부정적이지 않나.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살려야겠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빨리 정리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늦어질수록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들의 신규 거래까지 위축된다. 금융권은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꺼릴 것이다. 그러면 산업 전체가 자금난에 시달릴 수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을 두고 노사 의견 대립이 커지고 있는데.

“2006년에 법을 제정할 때 비정규 직 근무 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는데 기업의 현실과 맞지 않다. 기업은 전문적인 핵심 업무를 하는 직원을 비정규 직원으로 채우지 않는다. 주로 단순·보조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근무 기간이 끝나면 다른 비정규 직원으로 대체하거나 아웃소싱하는 형편이다. 노동계의 기대와 달리 기업은 비정규직 기간이 짧다고 해서 이들을 바로 정규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근로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해 일자리를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적어도 4년은 돼야 한다. 아예 제한 기간을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노사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나.

“1월은 13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파업이 발생하지 않은 달이었다. 경제위기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불가피하게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등에서 대립이 예상된다. 분명한 건 기존의 노동운동 방식이나 노사 관계가 한 단계 올라서지 않으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 회복 시점은 언제로 예상하나.

“본격적으로 회복될 시점을 확신하긴 어렵다. 경기 회복 여부는 미국·중국 등 우리나라와 교역을 많이 하는 국가의 경제 상태에 달렸다. 이들 국가가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어 그 효과가 하반기에는 나타날 것이다. 중국이 8%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준다면 올 중반기께 바닥을 치지 않을까 본다. 다만 급격히 회복되지 않고 완만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들이 현금을 움켜쥐고 투자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는데.

“정치권이나 정부가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규제 개혁과 금리 인하 조치 등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의 협조를 바란 것으로 해석된다.”

-대한상의 차원에서 일자리 나누기와 관련해 하고 있는 사업은.

“21개 지방상의와 ‘중소기업 청년인턴’ 사업에 참여해 일자리를 찾아주고 있다. 더 중요한 건 회원사를 대상으로 일자리 나누기 필요성을 알리는 작업이다.”

-중앙일보에서도 ‘일·만·나(일자리 만들기 나누기)’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사회적 공감 형성에 힘써 달라. 언론기관이 앞장서서 노사 또는 민정 간의 입장 차이를 객관적으로 전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손해봤다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다. 모두들 어려운 시기다.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문병주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손경식 회장=2002년 10월 CJ 대표이사 회장에 오른 뒤 2005년 11월부터 서울상공회의소 및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아왔다. 지난달 25일 서울상의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에 재선임돼 관례대로 이달 중 열릴 대한상의 총회에서도 20대 회장에 재선임될 예정이다. 그는 상공업계의 권익을 대변하고 정부와 기업의 가교 역할을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4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함께 ‘민관 합동 규제개혁추진단’을 설립해 규제 완화 및 철폐에 힘썼다. 지금까지 1211건을 정부에 건의해 이 중 374건이 정책에 반영됐다. 경제 5단체가 과거 5년간 건의한 규제 철폐 건수(298건)를 넘어선 수치다. 손 회장은 세제발전심의위원장도 겸임하고 있다. 지난해 소득세·법인세 감면을 추진해 성과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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