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자리센터 가보니 … “4050세대 취업 원서 안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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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레스센터 5층에 있는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에는 요즘 구직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센터는 1월 말 서울시민에게 맞춤형 취업 지원을 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지난달 25일 오후에도 10여 명이 찾아와 상담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을 빼고는 30대 이상이었다.

20~30대 청년층뿐 아니라 장년층의 절박함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 위치한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상담사 앞에 앉은 강모(49·행당동)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의 영업관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온 그는 작은 회사지만 한때 간부도 지냈다. 하지만 지난해 봄 뇌경색으로 일을 그만뒀다. “8개월 동안 받는 실업급여가 끊기기 전에 새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그에겐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이제 고3이 되는 아들이 있다.

하지만 재취업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력을 살리고 싶었다”는 그에게 나이가 많다며 원서조차 받지 않는 기업이 태반이었다. 다른 직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과거에 받던 수준의 연봉은 아예 포기했다. 상담사가 “경비직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강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력서에서 대학원 학력을 지웠다.

백화점과 할인마트에서 운송·배달 일을 20여 년간 해 온 정모(41·거여동)씨에게는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다. 자녀는 셋.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늦둥이 아들도 있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월급을 받은 뒤 지금껏 수입이 없다. 인터넷을 꼼꼼히 뒤지며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살펴봤지만 정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정씨는 “조금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젊은 친구들을 뽑아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 속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자리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울시는 올 초부터 행정서포터스·청년인턴·청년공공근로사업 등 청년 일자리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해서도 아이 하굣길 도우미 등 일자리 2만3000개를 만드는 중이다. 주부 대상으론 ‘엄마가 신났다’ 프로젝트를 진행해 2만800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서글픈 4050세대=정작 부양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절박한 4050세대 장년층을 위한 일자리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기업들이 이들을 외면한다. 일자리플러스센터의 경우 구인 요청은 2800여 건에 달하지만 장년층을 원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청년, 혹은 파트타임으로 쓸 수 있고, 임금 부담이 작은 고령자나 여성이 구인 대상이다. 그 탓에 센터가 한 달간 취업시킨 137명 중 장년층은 고작 17명이다.

이날 상담을 하러 온 최모(48·연남동)씨는 “해운회사에서 20여 년을 일해왔는데 지난 1년 동안 면접을 단 한 번 보지 못했다”며 착잡한 표정이었다. 장년층을 원한다 해도 대부분 경비·운송·배달·운전 등 단순 업무직종이라 한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거나 기술·자격증이 있는 이들의 박탈감은 더 크다.

건물종합관리업체인 현일KS시스템의 김철재 인사관리부장은 “솔직히 급여 부분이 부담스럽다”며 “이들 대부분은 안정적 일자리를 원해 파트타임을 쓰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겐 ‘실력’을 보여 줄 기회가 드물다. 급한 마음에 강씨처럼 경비직이나 단순 노무직에 지원하는 사람도 많다.

중앙대 이병훈(사회학과) 교수는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에 쏟아진 장년실업자는 ‘사오정 세대(45세 정년 세대)’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의 장년은 실업대책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청년 실업자에게 정책이 맞춰지면서 장년층은 소외돼 있었다”고 분석한다. 장년 실업은 곧 가정 경제 붕괴로 이어지는 만큼 장년층을 배려한 정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월 현재 4050세대(40~59세)의 실업자는 24만5000명(실업률 2.3%)에 달한다. 2008년 22만9000명보다 약 1만6000여 명이 늘어났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 한 해 실업률은 4%, 전체 실업자는 월평균 96만 명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토대로 변수가 똑같다고 가정할 경우 4050세대 실업자는 27만8000여 명(실업률 2.6%)으로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장년층 위한 공공 일자리 시급=일자리센터 최영숙 청장년팀장은 구직이 어려운 장년층을 두 부류로 분류한다. 강씨처럼 한 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경우와 정씨처럼 단순 노무직을 전전해 온 경우다. “강씨에겐 기업과 장년의 ‘만남’이 중요하고, 정씨는 기술교육과 함께 공공 일자리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경쟁력강화본부 박대우 고용창업담당관은 “추경 예산이 확정되면 4월 말부터 1만여 명의 장년 남성을 대상으로 공공 일자리를 모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복지시설 관리 등 사회서비스 분야는 물론 경력을 살릴 수 있도록 행정자료 조사통계나 물가관리 모니터링 등에서 일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임주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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