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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이야기 들려주는 건 손자 가진 할머니의 기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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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소설가 박완서씨의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는 봄기운이 스며 있었다. 아침부터 마당 한쪽에 튤립 구근을 심었다는 그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차례로 꽃을 볼 수 있게 조치해 놨다”고 말했다. [표준 인턴기자]

‘복수초’는 눈을 뚫고 꽃을 피워올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 원로 소설가 박완서(78)씨의 경기도 구리시 자택 앞마당에서도 복수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작가는 “꽃에 온기가 있는지, 쌓인 눈을 동그랗게 녹이며 얼굴을 내밀더라”고 말했다. 복수초처럼 온기를 품은 짧은 이야기책 『세 가지 소원』(마음산책)이 나왔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동화를 추려 모은 것이다. 마음을 따사롭게 어루만지는 이야기들이 첫 꽃 본 것마냥 반갑다.

◆생명 중시와 자연 사랑=“밝은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옛날 걸 또 내고 그러느냐는 말도 있겠지만, 그때보다 지금 더 필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이 태어나는 데 대한 감동과 기다림, 생명을 중시하고 자연을 아끼는 마음들이 많이 없어져서….”

자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이야기는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이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며 나무와 바위에 ‘산을 사랑하자’란 글씨를 크게 쓰고, 팻말을 달고, 전단을 뿌리며 산을 망가뜨리던 모습을 풍자한다.

“지금은 ‘자연을 보호합시다’란 팻말을 매는 시대는 아니죠. 그래도 아주 절박한 문제가 그저 입에만 붙어 있지 않나 싶어요.”

다시 읽으면서도 ‘이거 참 괜찮다’ 싶은 글은 ‘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고, 30여 년 전에 쓴 ‘다이아몬드’는 그냥 아끼는 이야기란다. ‘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 따뜻한 이야기고, 사랑을 위해 평생을 바쳐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는 금속공의 사연 ‘다이아몬드’는 서양 동화 같다. 최근 새로 쓴 ‘큰 네모와 작은 네모’ ‘세 가지 소원’을 포함해 총 10편의 동화가 담겼다.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가 좋아=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다.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엄마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배 속의 아이에게 나누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넉넉한 마음을” 갖는다. 아빠는 아기가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마련하려고 놀이터의 그네까지 고치고, 할머니는 이야기 선물을 마련해 놓고 아기를 기다린다. 돈으로 아이를 키우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새 생명을 맞이하는 데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동화다.

“이야기해 주는 건 할머니의 기쁨이에요. 난 모든 광경 중에서 책 읽어주는 광경이 제일 좋더라…. 못 알아들으면 설명을 보태고, 엄마의 감정도 들어가고.”

작가는 다섯 자녀와 그 손자들까지 동화책을 읽어줘 한글을 깨치도록 했단다. 아이가 좋아할 이야기를 손수 책으로 만들어 읽어주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옛 풍습이 옳은 듯해요. 늙으면 마음이 어려지고 아이들과 잘 통하거든요.”

여든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과연 어렸다.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빠져 “구준표(이민호)가 나온 뒤로 그 이전에 있었던 꽃미남의 이미지들은 다 지워진 것 같다”며 웃을 땐 10대 소녀가 따로 없었다.

구리=이경희 기자, 사진=표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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