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을 송곳처럼 파고든다 … 인터뷰의 위력, 저널리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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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5일 개봉하는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1977년 4500만 명이 넘는 시청자를 TV 앞에 붙들어놨던 희대의 인터뷰 얘기다. 인터뷰이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닉슨(프랭크 란젤라). 그가 그토록 꺼리던 카메라 앞에 서도록 만든 인터뷰어는 한물 간 예능토크쇼 MC 프로스트(마이클 쉰)였다. 도저히 성사될 것 같지 않던 인터뷰가 이뤄지게 된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노련하다 못해 노회한 닉슨은 자신의 과오를 국민 앞에 합리화해 정계에 복귀하고 싶었고, 프로스트 같은 ‘딴따라’야 얼마든지 갖고 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프로스트도 계산이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닉슨에게서 한 마디라도 끌어내면 다시한번 몸값이 치솟으리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했으니.

닉슨 역의 프랭크 란젤라(左)와 프로스트 역의 마이클 쉰은 연극무대에서 맞춘 호흡으로 영화를 흡인력있게 몰고간다. [UPI코리아 제공]


자, 두 남자의 대결에 ‘윈-윈’은 없다. 누구 하나가 KO패당하지 않으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승자독식이다. 4번의 인터뷰 중 3번은, 아니 마지막 인터뷰가 거의 끝날 때까지도 닉슨의 완승은 너무도 확실해 보인다. 프로스트는 딱할 정도로 변죽만 울린다. 방송국 PD와 닉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그의 팀도 속수무책이다. 물론 영화가 그렇게 하릴없이 끝날 리는 없다. 시사프로는 아니었지만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다년간 진행했던 프로스트가 영 ‘허당’일리가 있겠는가.

그의 마지막 강펀치는 이 전직 대통령이 그토록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으면 하던, 윗입술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는 궁지로 닉슨을 몰아간다.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제대로 공략했을 때 인터뷰가 갖는 파괴력과,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압축해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2006년 런던과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성공한 연극이다. 연극에서 각본과 총제작을 맡았던 피터 모건이 다시 각본을 썼고, 프랭크 란젤라와 마이클 쉰 두 배우도 다시 영화화에 동참했다. 아무래도 영화보다는 연극이 더 걸맞은 형식이라는 생각에 기우는 건, 두 주인공 외에 곁가지를 좀처럼 두지 않는 다큐멘터리 같은 연출 때문일 것이다. 닉슨과 프로스트가 나누는 한밤의 전화통화와, 그로 인한 게임의 급반전이 이뤄질 때까지 영화의 템포가 다소 느리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러한 정공법 때문이다.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의 론 하워드 감독은 대신 두 배우의 흡인력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특히 제81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과거 토니상을 3회나 수상한 대배우 프랭크 란젤라가 발산하는 기는 정중동, 대단하다는 말 외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기 힘들다.

또 하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닉슨 대통령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던 사람도 ‘인간 닉슨’에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닉슨이 정말 인터뷰료 한두 푼에 연연해하는 ‘쪼잔한’ 인사였는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은 날 깔본다”며 명문대 출신 정치 라이벌들에 대한 열등감을 토로하는 장면에서는 인간적인 안쓰러움마저 느껴진다.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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