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위기설 그 이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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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30면

지난해 베트남 위기설이 파다했다. 지난해 5월 한 일본 증권사의 이코노미스트가 베트남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위기설이 불거졌다. 주가가 곤두박질했다.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일부가 탈출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9월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패닉으로 악화됐다. 많은 나라의 수출과 내수가 줄어들면서 실물경제가 추락했다.

베트남 경제는 지난해 6.2% 성장했다. 예년보다 조금 낮은 수치지만 글로벌 경제상황에 비춰 나쁘지 않다. 한때 30%(전년 동기 대비)까지 치솟던 물가상승률도 22% 선으로 낮아졌다. 불어나던 무역수지 적자도 걱정했던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단기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일도 심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뚝 떨어졌다. 반면 베트남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7년 813달러에서 2008년 916달러로 높아졌다. 최빈국 탈출이라는 목표 달성이 앞당겨질 듯하다. 유엔이 정한 세계 최빈국 기준은 1인당 GDP 960달러다. 아마도 베트남은 올해 최빈국 신세를 벗고 중간 소득 국가군으로 진입할 듯하다.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보면 베트남 경제 심장이 잘 뛰고 있음을 더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 FDI(허가 기준)는 1171건 602억 달러였다. 2006년보다 6배, 2007년보다는 3배가 넘는 규모다. 인도네시아 등 다른 이머징 국가보다 많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트남 위기설 때문에 한국 자본이 주춤한 사이 말레이시아와 대만 등이 투자를 늘렸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한 해 동안 149억 달러, 대만은 86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에 반해 2007년 말까지 1위를 달리던 한국은 지난해 18억 달러를 투자하는 데 그쳤다. 순위도 4위로 밀렸다.

현재 베트남 상황은 위기설이 나돈 지난해 5월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당시 베트남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순간처럼 당장 부도 상태에 빠질 듯했다. 그렇다고 베트남이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모로 불안하다. 2007년 1000 선을 넘나들던 주가지수가 현재는 250 선까지 미끄러졌다.

하지만 베트남은 브릭스와 함께 21세기 주요 경제권으로 부상할 11개 나라를 뜻하는 ‘넥스트 11(Next 11)’이나, 유망 신흥시장을 의미하는 비스타(VISTA) 등 신조어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비스타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신 컴퓨터 운영체제의 이름이 아니라 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공·터키·아르헨티나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베트남의 매력을 시사한다. 베트남은 중국경제의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차이나 리스크’를 보완할 수 있는 나라로도 평가받고 있다.

베트남의 투자 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미국과 정상 무역 관계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WTO 가입은 베트남 정부가 12년 동안 노력한 결실이다. 게다가 철강과 석유화학 등 대규모 기초소재 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다. 원자재 현지 조달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원자재를 곧바로 조달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베트남 경제의 최대 약점이었다. 도로와 항만 등 인프라도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에 투자하면 원하는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을까? 장래가 밝고 투자 여건 등이 좋아진다고 해서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잖은 불안 요인이 버티고 있는 곳이 바로 베트남이다.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베트남 및 세계 경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 변화, 금융시장 변동, 외국인 투자 동향, 신용등급 추이 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유가·곡물·원자재 가격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베트남 동(Dong)화 가치의 급락 등 환율 변수에 대비해 헤지 전략이 필수적이다. 셋째,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가 경제 불안이 심해지고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금융과 외환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위기’로 치닫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대중의 통념을 역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위기설이 돌면 신흥개도국 투자자들은 쉽게 패닉에 휘말린다. 주가 등 자산 가격이 추락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V’자 형태로 빠르게 회복하곤 했다. 위기설 등이 퍼지면 지레 겁먹고 주춤하기보다는 신중하면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결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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