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끌고 시장통 찾아간 은행… “서랍에 돈 넣어놨어” “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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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06면

외환위기 시절 수퍼마켓에서는 유제품이 덜 팔렸으나 한국야쿠르트의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소비자와 쌓아온 정감 덕이다. 이른바 ‘스킨십 경영’이다. 새마을금고의 힘도 스킨십에서 나온다. 새마을금고연합회에 근무하다 유학 중인 전재영씨는 “금고 직원이 직접 상점을 방문해 영업하는 ‘파출수납’이야말로 금고 마케팅의 정수”라고 분석했다.

새마을금고 ‘스킨십 마케팅’ 파출수납 현장

파출수납은 영업시간이 겹쳐 금융회사를 방문하기 힘든 상인들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다. 어느 금융회사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지금은 새마을금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서울 평화시장새마을금고를 찾아 파출수납하는 직원을 따라다녀 봤다.
지난달 20일 오후 2시 평화시장 옥상의 금고 사무실. 인테리어는 소박했다. 의자 3개와 탁자 한 개, 집무용 책상과 책꽂이가 하나씩 놓여 있을 뿐이다. 박영태 전무는 파출수납을 하는 이유를 “덩치가 큰 은행에 대응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이 열면 같이 열고, 놀면 같이 논다”고 덧붙였다. 금고는 일요일을 빼고 오전 7시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아침 일찍 여는 것은 새벽까지 일하는 3층 도매상인들을 위해서다. 금고 근무가 고돼 이직하는 직원도 더러 있다.

금고 직원 김창한·문정미(여)씨가 일을 시작했다. 두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긴 복도가 하루 두 차례 업무를 보는 현장이다. 파출업무에 쓰이는 카트는 금고 전산망과 무선으로 연결돼 있다. 입금·출금 등 금고 일은 거의 다 해낸다. 김씨가 카트 모양 때문에 겪은 일을 소개했다.

“카트가 노래방 기계처럼 생겼다고 사장님들이 노래 한번 불러 보라고 해요. 그러면 ‘한 곡 할까요’ 하고 받아넘기곤 합니다.”

카트에 통장을 넣으면 거래 내역이 찍혀 나온다. 카트를 끌고 다니기 힘든 좁은 곳이나 언덕이 가파른 곳에서는 전용 가방이나 자동차를 이용한다.

문씨가 한 점포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은 곧바로 돈과 통장을 건넨다. 말이 필요 없다. “적금 드신 분들은 매일매일 찾아가야 합니다.”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문씨를 붙잡더니 한마디 건네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서랍 거기에 (돈을) 넣어놨어.” 문씨 보고 알아서 입금해 달라는 뜻이다. ‘서랍 거기’는 할머니와 문씨만 아는 비밀 장소인 셈이다. 금고 직원이 나타날 때를 기다려 화장실을 다녀오는 상인도 종종 있다. 이럴 때는 금고 직원이 가게 손님을 맞는다. 돈을 세어 보지 않고 맡기는 상인도 꽤 된다. 오전에는 반찬을 넣어 주며 “점심 시간에 직원들과 함께 먹어라”고 격려하는 상인도 만난다고 한다. 어떤 때는 상인들이 준 음료수가 돈 넣는 카트에 수북이 쌓이기도 한다.

오후 4시 1층과 2층 점포를 대부분 들렀다. 2층은 오전에 들러 일이 적었다. 평화시장 파출 업무는 본점 한 곳, 분소(지점) 두 곳에서 각각 2인1조로 나간다. 돌아야 하는 점포는 총 1700여 개로 조당 500개 이상이다. 점포당 3~4분이 걸린다. 김씨는 “여기서 일하다가 장인어른을 만나 결혼했다”고 털어놨다. 금고 여직원 5명도 시장 상인과 친해져 며느리로 들어갔다. 이런 경사는 전국의 금고에서 흔한 일이다. 금전 업무를 잘하고 예의까지 바른 여직원은 사업을 하는 집안의 며느리감으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금고 측은 평화시장 상인들이 야유회를 갈 때 관광버스를 대준다. 정월 대보름에는 떡과 막걸리를 돌린다. 대출 이자를 은행보다 낮추려고 노력하고 금고 수익금 중 남는 돈은 배당금으로 돌려준다. 지난해 배당률은 7.04%에 달했다. 경조사도 꼭 챙긴다. 상인들도 금고에 정이 들었다. 다른 지역으로 점포를 옮기고도 여전히 이 금고를 이용하는 상인들이 있다고 한다.

상인들 입에서 경기를 느낄 수 있었다. M매장 주인은 “경기가 안 좋은데도 가게 세는 절대 안 내려준다”고 울상을 짓는다. 박 전무는 “경기가 좋을 때는 1~3층을 한번 돌고 나면 하루 4억원이 모였으나 올해는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인 1억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이동수(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1) 인턴기자가 이 기사 작성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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