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사람들도 덜 먹고 덜 쓰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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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견 건설업체의 임모(63) 회장은 요즘 점심을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 1년 전만 해도 그는 특급호텔 일식당의 단골손님이었다. 하지만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어둔 여윳돈에서 나오는 이자가 확 준 데다 회사 실적마저 신통치 않자 씀씀이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 침체 여파로 지난해 4분기 가계의 실질소득과 소비가 동시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비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마저 지갑을 닫고 있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08년 가계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가구(2인 이상)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302만30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 줄었다. 월평균 실질 소비지출도 203만원으로 3% 감소했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도 실질소득은 0.2%, 실질소비는 1.1% 각각 감소했다. 통계청 김동회 사회복지통계과장은 “소득과 소비가 동시에 준 것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소비 감소는 오히려 소득수준이 높은 계층에서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소득이 상위 20%에 포함되는 계층(5분위)의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1.9% 줄었다. 3분기(-0.1%)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두 분기 연속 감소세다. 나머지 계층에서 모두 소폭 증가했다.

이 때문에 골프회원권 가격이 반 토막 나고, 수입차 판매가 30% 넘게 주는 등 고소득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상품 판매가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교육비 지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3%나 늘어 사교육비 부담은 여전히 컸다.

소득 양극화도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분위 계층의 소득을 1분위(소득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5.74배로 1년 전보다 0.01배 커졌다. 하위 30%에 포함된 가구의 52.8%는 지난 분기 살림이 적자 상태였다. 적자 가구의 비중은 전분기보다 4.4%포인트나 높아졌다. 나머지 계층에선 적자율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 김성진 사회정책과장은 “앞으로 소득이 더 줄 저소득층을 위해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확대에 힘쓰고,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 고소득층이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철·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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