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광고·패션으로 앞서가는 '상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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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 남자가 좁은 거리를 무작정 달린다.

러다 어떤 여자와 부딪히고 어이없게도 생선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 '닉스' 광고)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날아 다니다 바람을 만난다.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이 실사 (實寫) 와 애니메이션 화면의 합성으로 나타난다.

( '제드' 광고) 얼마전부터 텔레비전에 등장해 시청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두개의 의류광고다.

아무런 뜻도 없이 단지 분위기만 연출한다.

심지어 무엇을 광고하는지도 밝히지 않고 단지 말미에 브랜드 이름만 보이고는 끝난다.

이는 이미지.컨셉 광고다.

지난 6월 서울 강남의 하드록 카페에서는 컬러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염색한 어린 모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는 패션쇼가 열렸다.

우아한 모델이 특유의 골반걸음으로 관객 앞을 지나며 복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패션쇼와는 거리가 멀었다.

의류업체 ㈜신원의 새 브랜드 '루이.레이' 를 선보이는 이 행사는 옷의 아름다움도, 실용성도 강조하지 않았다.

단지 브랜드 옷을 입은 아이들이 자주 모이던 공간에서 평소처럼 노는 모습만 보여주고 끝났다.

이른바 현장 광고다. 왜 광고주들은 어른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런 광고를 해 댈까. 또 도대체 누가 이를 통해 구매충동을 일으킬까. 해답은 이들 의류가 판매대상으로 삼고 있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대학교 초년생에 이르는 소비층의 문화적 성향에 있다.

이 연령층을 업계에서는 '마우스족' 이라고 부른다.

미키 마우스와 컴퓨터의 마우스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와 정보통신의 세례를 듬뿍 받은 세대라는 의미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수혜세대면서 문화적으로는 영화.뮤직비디오 등 서구의 영상문화와 일본의 만화영화.만화에 젖어 살아왔고 여기에 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문화정보를 시간차 없이 접하는 세대다.

마우스족은 패션에 대해 관심과 분별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데다 멋진 옷을 입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같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울려 다니는 등 또래의 문화적 일체감을 강조하는 경향을 갖고 있어 브랜드 하나가 눈길을 끌면 '덩달아 소비' '끼리 소비' '폭발 소비' 의 행태를 보인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 못하며 유명 브랜드를 입지 않으면 무리에 끼기가 힘들다.

따라서 업계는 이들의 취향에 맞춰 뮤직비디오 스타일이나 충격적인 영상화면을 이용해 어떻게든 브랜드 이름을 마우스족에게 인식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이미지.컨셉 광고라는 이름의 다소 난해한 '작품' 이 마켓팅활동이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전 한 청바지 광고에 충격적인 수술장면이 등장한 것이 상징적이다.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의 상당수도 이들 마우스족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업체 제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우스족의 대중문화 소비에 편승한 마켓팅인 셈이다.

가격도 티셔츠 8만원, 청바지 10만원 정도로 결코 만만치 않지만 마우스족의 구매력은 불황에도 전혀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류시장은 지난해 1조5천억원에서 올해 2조원대로 3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전망. 부모세대만 불황이지 마우스족에게는 불황이 없어 보인다.

㈜신원의 양정철 차장은 "그래서 앞으로도 고정관념을 깨고 어른들이 이해하기 힘든 해괴한 광고나 판촉행사가 계속 등장할 것" 이라고 말한다.

문화와 소비가 결합하는 이 현상은 앞으로 더욱 도도해질 터. 이제 또 무슨 '족' 이 소비의 주체로 등장할까.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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