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당시 KAL기 격추 옛소련 조종사 "미군 정찰기 오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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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금 다시 격추 명령을 받는다 해도 미사일을 발사했을 것입니다."

14년전인 83년 9월1일 앵커리지를 출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기를 사할린 부근에서 격추시켜 2백69명의 목숨을 앗아간 겐나디 오시포비치 (54) 전 소련 방공군 중령. 그는 당시 대한항공기가 "점열등도 켜지 않고 영공을 침범했을 뿐만 아니라 유도착륙을 거부했다" 며 미군 정찰기임을 확신했다고 말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만일 격추시키지 않았다면 명령불복종으로 군사 재판에 회부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이 격추한 비행기가 민간항공기였다는 사실을 안 오시포비치 중령은 이 사건을 잊으려고 애를 썼으며 지난 93년 5월에는 사할린 섬을 개인적으로 몰래 방문, 사건의 진상을 캐보려 시도했으나 그가 섬에 들어온 것을 안 러시아 정보당국이 강제로 떠나게 하기도 했었다.

사건 직후 공로훈장과 1계급 특진을 받았고 86년 미그 - 23기 조종중 사고를 당해 89년 은퇴, 현재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 타가로크시에서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

자신의 요격으로 무고한 수백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심리적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자주 마시게 됐다는 그는 매년 돌아오는 9월1일마다 당시의 악몽을 떠올린다며 "희생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 말했다.

[모스크바 = 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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