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Movie TV]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장 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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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씨가 부각되는 영화라 부담스럽지 않았느냐고요? 제가 학교(서울예전 영화과)에 들어가 처음 배운 게 '연기는 앙상블'이라는 이야기였어요. 남자배우가 죽어 있다면 여자배우가 살 수 없다고 봐요."

곽재용 감독이 만든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여친소')가 전지현의 영화로 비춰지는 것이 불만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올해로 연기 경력 9년째라는 장혁(28)은 현명한 대답을 내놨다. 한데 그 겸손한 대답은 자신감 넘치는 말로도 들렸다.

멋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내가 이번 영화에서 멋있게 나오지 않은 것 안다. 그러나 멋있게 튀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평범한 교사 명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장혁은 욕심이 없다. 트렌디 드라마에서도 '왕자님' 역할도 한번쯤 꿰찼을 법한데 오히려 피해 갔다. 여주인공에게 온갖 이벤트를 해주는 돈많은 왕자님은 남자배우에게 인기를 얻는 지름길 아닌가. "장나라씨와 함께 출연한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부잣집 아들로 나오지만 왕자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때도 비뚤어진 듯하면서도 순수한 극중 인물의 성격이 마음에 들어 택했다."

그가 좋아하는 멜로 영화 주인공은 배창호 감독이 만든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의 안성기 역할. 돈많고 멋있는 남자는 아니지만 지고지순하게 여자를 기다려주는 순박한 사람이다. 장혁은 그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반드시 멋스러울 필요는 없다고 느꼈단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그가 정말 남자답고 멋지다고 여기는 대목이 있다. 사경을 헤매던 경진(전지현)이 꿈 속에서 죽은 명우를 만나는 장면이다. 그는 쫓아오는 경진에게 매몰차게 "가라"고 외친다. 그때 경진이 명우를 따라가면 경진도 저세상 사람이 되는 설정이란다. 사랑하지만 떠나 보내는 그 마음이 진정한 남자의 배려라는 게 장혁의 설명이다.

성숙한 이유에 대해=장혁은 유독 성숙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물론 이유가 있다. 건설업에 종사하던 그의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일했다. 집에는 일년에 한번 휴가를 받아 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고, 어린 아들 장혁은 자기 가족과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모습에서 남자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연기 생활 9년 동안 줄곧 생각해온 것은 어떻게 하면 내 꿈을 이루면서 평생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였다"고 말한다. 연기를 예술이자 평생 업으로 생각하니 진지해질 수밖에. 그는 한때 체육교사가 되길 꿈꿨다. 기계체조 등 운동을 잘해서이기도 했지만, 1년씩 집을 비우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교사가 주는 일상적 느낌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대본이 걸레처럼 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하는 노력파로도 유명하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 배우였던 장나라의 깜찍함이 회자되고, 이나영의 연기 변신이 화제가 되고('영어완전정복'), 전지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아쉬움은 없을까. "노력한 것들은 남는다고 생각한다. 점이 하나씩 모여 원을 그리듯 언젠가는 그 노력이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의젓한 답이 돌아온다.

나의 미래에 대해=그는 DVD로 영화보는 게 취미다. 한번은 그동안 모은 DVD를 일렬로 세워놓고 보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 영화가 폭이 1㎝도 되지 않는 저 공간에 들어간다. 저렇게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장혁이라는 배우의 느낌은 어떻게 남겨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일단 이번 영화의 제목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처럼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편안하게 소개하며 30대를 준비하고 싶다는 결심이 섰다고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기보다는 자신 안에 녹여가며 여지를 남겨두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그렇다면 그 꿈은 벌써 20대에 이룬 것 아닐까. 첫 영화 '짱'의 고등학생이 어느덧 '여친소'의 물리교사가 되었듯, 그는 영화와 함께 무르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글=홍수현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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