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희의 SUCCESS 인상학] 주인 닮는 필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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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경매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글. 한줄로 평행한 데서 일관성을 엿볼 수 있고 비대칭의 글체에서는 약간의 외곬 기질이 나타난다. 특히 가로 세로 줄긋기에 힘이 들어 있으니 추진력 있게 일을 처리하고 ‘ㅁ’의 각이 부드럽게 시작해 날카롭게 마무리 되므로 원만한 가운데 예리한 성격이 포함돼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은 세 번째 손가락에 펜이 닿아 생긴 굳은살이 있으면 '구세대'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컴퓨터 자판이 종이와 펜을 대신하게 돼 더 이상 손으로 글을 쓸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씨체는 여전히 개인을 나타내는 수단이자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만큼 글씨체는 주인의 체형과 성격을 따라간다. 서예대가들은 서체만 보고서도 "이 사람은 다리 등 하체에 병이 있다"는 식으로 쓴 사람의 몸 상태와 외모를 알아맞추기도 했다.

글씨체가 날카롭고 뾰족하면 얼굴이 갸름하고 눈매가 매서운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은 성격도 예민한 편이다. 반대로 두껍고 넓적하게 쓰는 사람은 대체로 땅딸막하고 살이 쪄 있다. 글씨가 부드럽고 둥글게 이어지면 성격도 낙천적이고 여유가 있다. 아래 위로 길쭉하고 약하면 몸이 호리호리하고 기운이 적다. 글씨가 큼지막한 사람은 통이 커서 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는 인물이다.

기분에 따라 목소리나 표정이 달라지듯 글씨체도 조금씩 달라진다. 중요한 결재를 앞뒀다면 먼저 결재받은 동료의 서류에서 상사의 사인을 유심히 보자. 사인의 끝 부분이 올라가는 경우는 상사가 기분이 좋거나 긴장했다는 증거다. 일자로 평행이라면 감정의 흐름이 안정적이고, 끝이 내려왔다면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처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작업 중'인 이성이 있다면 슬쩍 그의 수첩에서 글씨를 확인해 보자. 깨알처럼 작고 빽빽하게 쓰는 사람은 소심하지만 상대를 자상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다. 단 잘 토라지는 경향이 있으니 사소한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깔끔한 궁서체로 쓰는 경우는 융통성이 없는 반듯한 성격으로 연애도 모범생 스타일로 하는 사람이다. 글씨를 마구 날려 쓰는 사람은 생각이 빠르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성향이 강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는 저돌적으로 다가선다. 독선적인 면이 있으므로 그의 주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글씨를 날리면서도 예술적인 느낌이 들게 쓰는 사람은 센스가 뛰어난 감각파이므로, 옷.화장 등을 칭찬하는 말을 하면 효과가 있다. 글씨체를 이것저것 다양하게 쓴다면 예측불허,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팔방미인형이지만 일관성이 없다. 이런 사람의 호감을 사려면 깜짝 이벤트나 독특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글씨 중에서도 사인은 인물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얼마 전 방송국에서 만난 어느 가수에게 사인을 부탁한 적이 있다. 아들의 요청 때문이었는데 그는 영어. 한글을 섞어 복잡하게 사인을 하고 날짜와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멘트까지 붙였다. 아들에게 "최근 데뷔한 신인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려는 신인의 열망이 그런 사인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사인은 용두사미의 기질을 나타낸다. 크기가 왔다 갔다하는 사인의 주인은 심리적 기복이 심한 편이며 지나치게 동그랗게 굴리는 경우는 치밀한 면이 부족하다. 남이 흉내낼까 어려운 사인을 만들었다면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좋은 사인, 인상에 남는 사인은 어떤 것일까. 일반적으로 힘차고 기복이 심하지 않으면서 끝 부분이 평행에서 약간 올라간 것이 좋은 사인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끝이 올라가 꺾이면 화가 나 있거나 불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또 한가지 좋은 사인의 요건은 간결함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성공한 사업가의 사인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쾌하다. 한 유명 CEO 출신은 모든 서류에 사인으로 숫자 8 하나만 써넣는다. 필자가 "누가 도용하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괜찮아, 누가 흉내를 내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만만하여 굳이 복잡한 기교를 부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문서 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려면 좋은 사인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사인을 가졌더라도 몸이나 마음이 처진 경우에는 생각대로 글씨가 나오지 않는다. 필자는 이럴 경우 주로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음악으로 기분을 바꾸고 나면 사인에서도 좋은 기가 나옴을 느낀다. 중요 문서를 손으로 작성하거나 결재 사인을 하기 전이라면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좋겠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 글씨체에도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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