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Leisure]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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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톈산의 진주’ 이식쿨 호. 수정처럼 맑아 물속 20m까지 보이고, 효험있는 약수로도 유명하다.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인 톈산산맥이 보인다.

▶ 토크목 교외에 있는 부라나탑. 10세기에 축조된 것을 1970년대에 개축한 것이다.

전직 언론인 김호준(62.충남대 초빙 교수)씨의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여행기를 싣는다. 그는 지난해부터 세 차례에 걸쳐 약 한달간 이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무척 먼 곳 같지만 서울에서 직항 항공이 있다. 비행 시간도 3시간 정도다.

국토의 90%가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며, 3분의 1이 만년설에 덮인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릴 정도로 알피니스트의 천국이다. 정복을 기다리는 처녀봉만 수백 개다. 또 산정과 계곡 곳곳에는 무수한 호수가 반짝인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톈산(天山)산맥에 무려 19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호수가 널려 있다. 그 중 제일 큰 호수는 제주도의 3.5배나 되는 이식쿨 호. 해발 1600m에 위치한 이 '톈산의 진주' 이식쿨 호는 키르기스 사람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다. 택시나 버스에서 얘기를 걸면 그들이 던지는 첫 질문은 으레 "이식쿨에 가본 적이 있느냐"다. 톈산의 장엄한 설경을 머리에 이고, 가시도(可視度) 20m의 수정 같은 물이 반짝인다. 아스라이 펼쳐진 수평선이 안개에 잠길 때면 그 너머 눈 덮인 산들은 4000m 고공에 두둥실 떠있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천상(天上)의 천산(天山)이다. 이식쿨은 키르기스어로 '따뜻한 호수'라는 뜻. 물이 빠지는 데가 없고 증발만 해서 염분이 많아진 데다 수심 700m의 호수 바닥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솟구쳐 혹한에도 어는 일이 없다. 빙하가 녹아 내린 청정수와 미네랄 온천수가 뒤섞인 이 소금기 밴 물은 약수로도 알려졌다.

수도 비슈케크(해발 800m)에서 동쪽의 이식쿨 호로 가는 길은 옛 실크로드를 따라간다. 나무가 많고 잘 정비된 러시아풍 도시 비슈케크는 조금만 나가도 만년설 덮인 웅장한 산세를 접할 수 있다. 비슈케크를 떠나 60km쯤 가면 상업중심지 토크막이다. 인근에 10세기 건축물인 '부라나탑'과 온천이 있어 들를 만하다. 이식쿨 호는 비슈케크 동쪽 160㎞에 위치한 어항 발릭치에서 시작된다. 트럭 운전사, 보드카, 홍등가로 소문난 발릭치엔 고려인이 운영하는 '서울식당'이 있다. 소련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 1991년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에 고려인 2만명이 살고 있다는 것도 우리의 관심을 끈다.

동서 길이 185km에 남북의 폭이 최장 60km에 이르는 이식쿨 호의 휴양지는 주로 북부 호반을 따라 전개된다. 발릭치에서 동쪽으로 1시간쯤 가면 나오는 코슈쿨에는 한국의 유기농단체 '한농'의 자연치료센터가 있다.

유명 호텔과 요양소는 발릭치와 호수 동쪽 끝 카라콜 사이의 큰 마을 촐폰아타를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 이곳 동쪽 20km 지점의 아브로라 호텔은 고위층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 성수기인 7~8월의 이 호텔 숙박료는 1인당 60~110달러.

촐폰아타에는 들판의 고대 암각화를 비롯해 이 나라 최고의 말 사육장, 박물관, 해변 등 볼거리가 많다. 촐폰아타에서 동쪽 50㎞ 지점, 아나니에보의 유서 깊은 카자흐스탄 정착촌을 거쳐 다시 90㎞를 가면 이식쿨 호와 톈산의 거대한 산악장벽 사이에 자리한 카라콜이 나온다. 해발 1770m의 카라콜은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전원도시. 달콤한 사과로 유명하다. 이곳 장터는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 특히 일요일마다 서는 가축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산록의 야크 목장도 찾을 만하다. 카라콜 인근 제티오구스 계곡에는 둘로 쪼개진 심장 모양의 바위와 '일곱 마리 황소'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붉은 바위산이 관광객을 부른다.

◆ 이식쿨 호 가는 길=비슈케크에서 동쪽의 카라콜로 가는 대형 버스가 하루 4 ~ 5차례 있다. 북부 호반을 따라 달리는 카라콜행은 목적지까지 7시간 걸린다. 이곳저곳 둘러보려면 택시를 빌리는 게 편하다. 요금은 운전사와 미리 흥정할 것. 대체로 여행에 소요될 휘발유 값에 2.5배 곱한 수치가 적정선이다. 러시아 차량은 대개 100㎞당 휘발유 12ℓ를 소모한다. 농촌 임금이 한달 15 ~ 20달러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숙박=호텔에서 값싼 여관.민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알뜰 여행자라면 하루 10 ~ 20달러로 숙식에 교통비까지 해결할 수 있다. 여행업자가 운영하는 '유르타 인'(천막 여관)이 곳곳에 있다. 하루 숙박료는 1인 2식 기준 250 ~ 600솜. 솜은 키르기스스탄의 화폐단위. 약 44솜이 1달러다. 개인 집이나 목초지 천막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민박은 키르기스스탄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주인이 내놓는 코유미스(발효된 말젖)와 빵은 사양 않고 받아먹는 게 예의다. 요금은 아침 포함 1인당 200솜 정도. 사례로 20% 정도 더 얹어준다.

◆ 교통편=인천공항에서 비슈케크까지 직항편이 있다. 비수기엔 2주일에 1편, 성수기인 여름엔 매주 1편 운항한다. 비자는 키르기스스탄 공관업무를 대행하는 서울주재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받는다. 그러나 비자 없이 탑승해 도착지인 비슈케크 마나스 공항에서 1개월짜리 관광비자를 받는 게 편하다. 수수료 31달러. 항공 및 여행 문의 : 조이코 02-775-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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