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보험 가입 운전자도 중상해 사고 땐 처벌 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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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조모(당시 24세)씨는 2004년 서울 강남구의 3차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도로를 횡단하다 승용차에 부딪쳐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다. 전치 12주의 진단이 나왔다. 뇌 손상으로 인한 마비 증세까지 덮쳤다. 조씨는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피해를 봤지만 가해 운전자인 이모씨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검찰이 이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4조 1항)은 ‘교통사고 가해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음주운전이나 과속 등 중대 법규 위반을 제외하고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정해 놨다. 이씨는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과속이나 음주운전 등 중대 법규 위반도 하지 않았다. 조씨는 이 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관계기사 5면>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6일 교통사고 피해자가 중상해를 당했을 경우에도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게 돼 있는 특례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중대 법규 위반에 해당하지 않으면 교통사고 가해자를 무조건 면책하도록 한 것은 교통사고의 신속한 처리 또는 전과자 양산 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피해자의 사익이 현저히 경시된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기존에는 조사를 받지 않고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내려지던 교통사고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조사대상이 된다. 종합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일단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었는지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과실로 피해자에게 중상해를 입힌 경우엔 형사 처벌을 받는다. 대신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기소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지 않은 경우엔 기존처럼 가해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면책이 된다.

민형기·조대현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위헌 결정의 폐해를 우려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빌미로 더 많은 배상을 받기 위해 가해 운전자를 압박하는 등 크고 작은 폐해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어느 정도의 피해가 중상해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중상해에 대한 판단은 형사소추기관 및 법원의 법해석 및 사실 관계의 적용에 따라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형법은 중상해를 ‘신체의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상해는 형법 258조 12항에 명시된 법률상 개념이므로 구체적 사건을 처리해 나가면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원칙적으로 26일부터 적용된다.

헌재는 또 독도를 한·일 양국의 중간수역에 포함한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7대2의 의견으로 기각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입학 정원 제한과 관련된 헌법소원에 대해선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김승현 기자

◆형법 258조의 ‘중상해’=신체의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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