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일찍 녹아 보름 빨리 식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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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6일 강원도 최북단 민통선 부근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큰까치봉 야산. 동부지방산림청 관계자 등 120여 명이 낙엽송 1800그루를 심었다. 겨울인데도 삽이 땅속으로 쉽게 들어간다. 올 들어 전국에서 처음 나무를 심은 데는 제주도 서귀포. 엿새 전이었다. 고성군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26일 동부지방산림청 직원과 산림 일자리 창출 근로자들이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 큰까치봉에서 2년생 낙엽송 묘목을 심고 있다. 올겨울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나무 심는 시기가 예년보다 보름 정도 빨라졌다. [동부지방산림청 제공]


동부지방산림청 자원조성계 강영관(43) 계장은 “묘목의 활착률(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땅이 녹자마자 나무를 심는데, 최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땅이 일찍 녹은 덕분에 지난해보다 보름 정도 빨리 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충남 태안의 안면도 꽃박람회 조직위원회는 꽃이 빨리 필까 봐 조바심을 내고 있다. 꽃박람회(4월 24일)가 열릴 때까지는 두 달가량 남았지만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튤립·히야신스 등 35만여 그루의 구근(球根) 식물이 벌써 땅속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 농업기술원 김동찬(47) 연구사는 “구근 식물은 뿌리에서 싹이 터 꽃이 피는데 지금 뿌리가 자라기 시작하면 개화 시기가 빨라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지온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원은 땅 위 2~3m 높이에 그늘막을 쳐 햇빛을 차단하고 서늘한 공기가 드나들게 했다. 땅에는 물을 계속 뿌려 온도를 낮춘다.

이달 들어 봄 같은 겨울이 계속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가 하면 가을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다. 이달 1~20일 전국 평균 기온이 평년(1971~2000년 평균값)에 비해 3.7도 높았다.

가을에 유행하는 쓰쓰가무시병 환자가 올 들어 55명 발생했다. 지난해 1, 2월에는 25명이었다. 2001~2004년에는 매년 10명도 안 됐으나 2007년 이후 계속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겨울철 기온 상승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시 모기도 여전히 극성이다. 서울 송파구보건소 전염병예방팀 오정호(28)씨는 “몇 년째 겨울 모기 박멸사업을 벌인 덕분에 모기가 줄어들긴 했지만, 건물 정화조나 집수정(물탱크)에서 서식하는 모기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겨울 모기가 극성을 부리자 이달 들어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모기 퇴치용 살충제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롯데마트 생활용품담당 장효덕 MD(상품기획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 권준욱 전염병관리팀장은 “지구온난화 추세가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모기가 매개하는 전염병 가운데 국내에서는 없었던 뎅기열과 웨스트나일열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라산에 서식하는 제주도롱뇽도 이상 난동(暖冬)에 이상 반응을 보였다. 2일 알을 낳았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빠른 것이다. 도롱뇽은 원래 2월 말에 알을 낳는다. 동해에선 수온 상승으로 명태가 잡히지 않고 있다. 강원도 고성군은 19~22일 명태축제를 열면서 수입산 명태를 사용했다.

낙동강 수질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상 난동과 가뭄이 겹치면서 낙동강 하류 남지(경남 창녕군)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지난해 2.6ppm에서 지난달 5.6ppm으로 올라갔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신도시정수장에서는 최근 응집제(물속 오염물질을 뭉치게 하는 약품) 투입량을 평소보다 40%나 늘렸다.

강찬수·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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