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이란 주제로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버릇 없기는 버스에서 노인을 봐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보통인데다 바지 한쪽에 허리가 통째로 들어갈것 같은 헐렁한 힙합바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폼이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돈 아까운줄 몰라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찾는 법이 없고 학교에서는 약한 아이가 있으면 떼를 지어 괴롭히기 일쑤라니 한심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선사시대 벽화에도 남아있다는 '요즘 아이들' 타령. 과연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나은 것이 없는 걸까. 눈부신 과학의 발달과 경제.문화의 성장이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자라나는 요즘 아이들은 확실히 옛날과 다르다.
취미.특기란에 쓸 것이 없어 한참을 망설이다 기껏 '독서' 나 '음악감상' 을 적어내던 부모세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취미생활에 푹 빠져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이들이 자신의 취미에 어느정도 전문성을 가지게 되면 또래들 사이에 '매니어' 로 불리게 된다.
자동차매니어.게임메니어.컴퓨터매니어.야구매니어.보드매니어.NBA매니어등 매니어가 될 수 있는 영역은 끝이 없다.
매니어의 특징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얻고 정리하며 규칙적으로 즐긴다는 것. 무조건 좋아만 한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보의 홍수속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나름대로의 '질서' 가 필요하다.
매니어들은 공통적으로 끊임없이 관심분야에 대한 책을 사보고 인터넷에 들어가 정보를 얻는 것은 기본. 컴퓨터 동호회에 가입해 어른들과 함께 동호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인천광성고 권혁남 (17) 군은 학교에서 유명한 군사매니어다.
옆반에서도 전투기나 탱크.미사일등 무기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혁남이를 찾아올 정도. 매달 '플래툰' 과 '컴뱃 암즈' 등 무기 전문잡지를 사서 외울 정도로 읽고 인터넷이나 군사전문 단행본 시리즈도 이용한다.
승용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자동차를 가까이 접하며 자라온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동차도 관심있는 분야다.
유치원때의 장래희망이 운전수였을 정도로 자동차를 좋아했던 현대고 김현석 (17) 군은 다른 학교의 자동차매니어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다.
학교에 '자동차.항공기 연구반' 이란 동아리가 있어 기술교사의 지도까지 받아가며 자동차 제작도 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아리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이 많아 학년초에는 자동차에 대한 지식을 다룬 선발시험도 치렀다.
김군은 자동차 전문서적을 사보고 모터쇼등에도 빠짐없이 찾아간 덕에 세계 유명자동차 모델의 엔진 성능차이에다 제작원리.설계내용까지 환하게 꿰고 있어 당당히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매니어들은 중고교의 한반에 보통 서너명씩은 있다.
매니어학생의 부모들은 학교성적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적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설명이다.
경기도남양주시 심석고 박태춘교사는 "컴퓨터나 스포츠등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취미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 라며 "이들 매니어들의 성적분포에는 별 특징이 없다" 고 말했다.
매니어바람은 초등학생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이명석 (부산수영구남천동) 군은 아직 어리지만 프로야구매니어로서 손색이 없다.
홈팀인 '롯데' 경기는 시즌시작 때부터 공책에 빠짐없이 기록해 뒀다.
공 하나하나를 스트라이크.볼.안타.뜬공등으로 분류하고 어느 선수가 어떻게 수비했는지도 꼼꼼히 적는다.
이제 이군은 롯데선수의 타율이 경기후 어떻게 변하는지 공책을 보지 않아도 척척 나온다.
이들이 매니어가 되는데는 부모의 영향도 크다.
특히 사진이나 패러글라이딩.컴퓨터등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경우는 부모의 취미생활이 아이들의 지적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이들 매니어들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반드시 '평생 업' 으로 삼으려 하지도 않는다.
취미는 취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전공과 굳이 연결시키려 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오히려 취미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세대 매니어의 '확고한 자기주장' 이다.
이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