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찻상 받은 저 바둑이’ 어디서 본 듯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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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연, 다도(茶道), 145×125㎝, 순지에 채색, 2008[가나아트 제공]

 곽수연씨의 한국화 ‘다도(茶道)’에서 찻상을 앞에 둔 바둑이가 멀뚱히 관객을 응시한다. 강은실씨의 ‘영묘조구궐내명화도’는 조선시대 왕실 행사를 기록한 의궤를 닮았지만 들여다보면 그림 속에 앤디 워홀의 저 유명한 ‘캠벨 수프 깡통’, 폴 고갱의 ‘타히티의 여인들’이 숨어 있다. 흡사 숨은 사람 찾기로 인기를 끌었던 그림책 ‘월리를 찾아서’의 한국화판이다. 조선 후기 민화 책가도(冊架圖)를 오늘에 되살린 김지혜씨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책장 속에서 커피잔과 담뱃갑, 패스트푸드점의 탄산음료컵 등 익숙한 요즘 물건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군자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고 해 사군자(四君子) 중에서도 유독 사대부 지식인의 사랑을 받은 ‘매화도’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씨의 TV 속에서 되살아났다. 사진가 구성연씨는 아예 나뭇가지에 팝콘을 잔뜩 매달고 사진으로 남겨 멀리서는 우아하고, 다가가면 발랄한 ‘매화도’를 만들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음달 29일까지 열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전이다.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공자님 말씀은 미술작품에도 적용된다. 좋은 작품에는 뿌리가 있으며, 현대 미술가들의 발랄함에도 족보가 있다. 희원 이한철의 ‘수양공주희화도’와 책가도 등 고미술 10여 점, 이와 관련된 현대 작가 26명의 30여 점이 어우러졌다.

불황인 요즘 각광받는 것이 고미술과 공예, 신예들의 작품이다. ‘온고지신’전에 앞서 이를 잘 버무린 것이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열린 ‘화가와 달항아리’(1월 15일∼2월 10일)전이었다.

국립 기관들은 ‘뮤지엄(museum)’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완전히 분리 운영되고 있지만 상업 화랑의 전시장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거리낌없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 02-720-201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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