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금융위기, 보다 근본대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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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의 잇따른 대기업부도와 금융불안은 우리경제에 이미 예정돼 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지속돼 온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자본수익률을 넘는 금리,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비싼 지가와 임대료는 기업 채산성과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왔다.

국내경기 침체와 수출가격 하락은 그동안 누적돼 온 기업의 부실을 터지게 하고 이는 다시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도 이러한 근본적인 왜곡을 시정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지난 4~5년간 이러한 근본적인 경제문제를 치유하지 못했고, 그 결과 우리에게 밀려오는 부도사태.대외신용도하락.금융불안을 이제 허겁지겁 막아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지난 약 10년간 우리국민이 누려왔던, 능력의 한계를 넘는 소득과 지출행위를 고려하면 앞으로 치러야 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금융시장 안정책을 내놓았다.

물론 이는 필요한 조치다.

금융은 신용을 근간으로 이뤄지는 산업이며 신용에 대한 회의가 올 때 금융기관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현재의 금융불안이 해외로부터 우리 금융기관의 신용도에 대한 회의에서 촉발됐고 이는 경제에 심각한 파장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정부가 조기진화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 부족한 유동성을 지원하고 금융기관의 대외채무상환에 대한 정부의 지원의지를 표명한 것은 일단 급한대로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신용위기를 넘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금융불안이 이것으로 쉽사리 해소되리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미 기업과 금융기관부실의 정도는 꽤 깊다.

시장은 단순히 정부의 지원의지만을 읽지 않고 과연 정부가 천명한 지원의지가 실질 가용자원으로 뒷받침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금융의 불안을 초래하게 된 근본적 원인인 실물부문에서의 문제를 개선할 구체적인 대책이 있는가를 읽는다.

금융과 외환시장의 혼란에 봉착한 거의 모든 나라 정부들이 외환보유고로, 국고로, 중앙은행 유동성으로 자국화를 방어하고 자국내 금융기관을 튼튼히 받쳐주겠다는 거듭된 의지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이 이를 차디차게 외면해 결국 금융위기로 치닫게 한 것은 바로 이런 의지표명 뒤에 경제의 근본적인 활력을 되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변화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윤제 [서강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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