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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어른론:‘한반도에 떠오른 별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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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주 체계로부터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은 별자리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선조에게 성군의 도를 깨우치게 하려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진상한 퇴계 이황은 손수 작성한 천체도에 큰 별을 몇 개 그려 넣었다. 별은 천체역학을 밝히는 태극, 즉 ‘위대한 표준’이었다. 19세기 중반, 개화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환재 박규수는 아예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평혼의)를 스스로 제작해 별을 관측했다. 별은 우주 문법과 인간 심성의 본질을 파악하게 해주는 빛나는 기호였다. 식자든 무지렁이든 현실의 유동과 지축의 자전을 한 점에 붙박여 반짝이는 별을 보고 헤아렸다. 별이 하늘의 이치를 알려주고 갈 길을 비쳐주는 ‘시대의 어른’으로 형상화된 배경이다.

용인 성직자 묘역에 안장된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의미에서 우주의 별이자 시대의 어른이다. 온갖 이설과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어른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화폐에 아로새길 인물 하나를 합의해 내기도 어려운 대한민국이라서 더욱 그렇다. 20세기 한국의 역사는 어른 파괴 과정이자 어른 몰락의 역사였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어른으로 입적되는 문턱에서 대부분 탈락했고, 어른이 될 만한 사람에겐 온갖 허물이 덧씌워져 존경의 세계로 드는 것을 막았다. 어른 될 재목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많은 인재가 친일로 빠져들었고, 더러는 암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더러는 월북의 길을 택했다. 해방 이후 한국은 심성적 공황 상태로 출발했다. 정신의 천체도에 그려 넣을 별이 사라졌던 것이다. 당시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죽했으면 청년 문학도 이어령이 척박한 문화계를 한탄하며 ‘화전민 문학론’을 들고 나왔겠는가.

서울을 폐허로 만든 한국전쟁의 처절한 포연을 뚫고 명동성당이 지친 듯 남아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만민평등의 성령으로 전래한 서학(西學)의 초심대로, 명동성당은 1898년 준공 당시부터 상처받은 조선인에겐 치유와 부활의 상징이었다. 그는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68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승품돼 명동성당에 착좌했다. 69년엔 추기경에 서임됐다. 시대의 사표여야 할 사람들이 독재정권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갈 때였다. 강력한 통치를 위해 군부 독재는 그 시대, 그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과 일전을 불사하고, 투항과 투옥이 반복된다. 탄압이 거칠면 저항도 거세다. 한국의 천주교가 남미와 달리 해방신학이라는 급진적 형태로 빠져들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탄압과 저항의 정면충돌을 완화하는 완충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명동성당이었고, 추기경이었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그의 메시지 앞에 독재자도 투사도 인간 심성의 본질을 반추했다. 독기를 품은 누구라도 잠시 멈칫거리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사람, 그게 어른이다.

그의 어른됨은 높은 지위와 학식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가 만나는 누구라도 ‘사랑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터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의식·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사랑의 언어를 깨우고 실행의 힘을 부여했다. 소외된 자, 장애인, 빈민, 민주투사의 등판이자 가짐과 누림에 젖은 세상에서 나눔과 베풂의 길을 열었다.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는 성(聖)과 속(俗)을 소통한 각별한 성직자였다는 사실이 40만에 달하는 조문 행렬로 나타난 것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성령의 자각, ‘사랑하며 사세요’에 깃든 시원적(始原的) 우애심의 요청을 필자 같은 속된 무신론자가 알 길은 없으나, 그는 분명 고도성장 속에 누적된 피로·과욕·경쟁심을 사랑과 우애로, 하늘의 이치로 용해하라고 권유한 후박한 시골아저씨 같은 분이었음은 안다.

이곳이 대한민국이기에 ‘어른의 요건’은 자못 독특하다. 일반 서민과 다르지만 너무 달라서는 안 되고, 같지만 너무 같아서는 안 되는 그 까다로운 요건 말이다. 그는 이 한국적 요건을 채우고도 남는 분이다. 부러진 안경테, 낡은 신발, 녹슨 세례 잔이 ‘서민과 같음’을 증명하고, 추기경이란 범접할 수 없는 신분임에도 자주 뇌는 ‘나는 바보야’라는 해학이 ‘다름’을 입증한다.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에 담긴 친근감과 외경심을 한 몸에 겹치도록 하는 진정성의 행보를 앞으로 누가 닮기라도 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지난 16일 해방 후 가장 큰 어른을 보냈다. 그가 떠나자, 정신의 천체도에 큰 별 하나 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