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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방학 이대로 좋은가]1.한국의 실태(1)…컴퓨터·영어등 기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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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6월20일 방학이 시작됐어요. 6월26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는 오전중에 계절학기로 컴퓨터 개론을 들었어요. 오후에는 친구들하고 당구치고 저녁에는 술마시다가 집에 가서 PC통신을 하거나 TV보다가 지냈어요. 그러다 뭔가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해봐야겠다 싶어 대기업에서 하는 현장실습 교육에 참가할려고 알아보니 모든 대기업이 4학년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포기했어요. 컴퓨터업계에 관심이 많아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지만 비수기여서 자리가 없더군요. 그래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는 집에서 돈을 받아 지리산.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그후 지난 9일까지는 집에서 별로 하는 일없이 빈둥거렸어요. 그러다 이렇게 지내면 안될 것 같아 지난 11일부터는 학교에서 23일까지 오전에 실시하는 인터넷 특강을 듣고 오후에는 전공과 영어공부를 하고 있어요. " 한양대생 李모 (24.전자전자통신전파공학군2) 씨는 "방학이 되면 알차게 보내자고 다짐하지만 결국 올 여름방학도 뚜렷하게 한 일없이 어영부영 보내고 있다" 며 아쉬워 했다.

李씨와 같이 방학을 알차게 보내지 못해 후회를 하는 대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고려대생 金모 (26.생물3) 씨는 "방학이 되면 도서관에서 영어와 씨름하는게 고작" 이라며 "방학이 끝나갈 때면 매번 후회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고 말했다.

중앙대생 徐모 (25.경영4) 씨도 "무역회사에 취직하고 싶은데 특별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집에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으며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전공 공부는 하지 않는다" 며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술마시고 집에 돌아와 새벽3시까지는 소설책을 읽는다" 고 전했다.

서울 신촌 C전산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서울여대생 崔모 (21.국문3) 씨는 "방학중 전공 공부를 하려고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다 학교에서도 별다른 전공교육 활동이 없어 취업준비를 할 겸 학원에 다니고 있다" 고 말했다. 그나마 3.4학년생은 취직이라는 당면목표가 생겨 영어공부 등 취직준비에 나서지만 1.2학년생은 구체적인 설계.계획없이 남들 하는 대로 이것 저것 집적거리다가 방학을 허송세월하기 일쑤다.

전공지식을 축적하거나 졸업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사전에 경험하는 노력을 찾아 보기 힘들다.

서울대생 尹모 (19.법학1) 씨는 "방학을 무척 기대했지만 막상 방학이 되니까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 과외 교사를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방학을 보냈다" 고 밝혔다.

뚜렷한 목표의식없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는 발상은 목돈이 들어가는 해외여행으로 확대됐지만 그저 남만 따라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겨울방학 때 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던 건국대생 姜모 (25.전기공학4) 씨는 "남들이 간다해서 가봤지만 영어공부에 별 도움이 되지않았다.

한국친구들과 실컷 놀다 왔을 뿐이다.

뭣하러 갔는지 모르겠다.

같은 비용으로 국내에서 잘 짜여진 학원에 다녔으면 오히려 알찬 공부를 했을 지 모르겠다." 고 후회했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황기태 (28.런던대 심리학 석사과정) 씨는 "방학에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 각자의 계획을 분명히 말하는 영국 대학생들을 보면서 또래의 한국 대학생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그들을 보고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어느 곳에 있는 지를 알게 됐다" 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韓相振) 교수는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 어떤 장기적인 목표를 정해 정열을 쏟는 것을 경시하고 목전의 현실적인 것만 중시하는 풍조가 있다" 며 "이는 합리성을 거부하는 세계적인 조류와도 관련이 있으며 이것이 목적 의식없는 대학 생활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고 진단했다.

이무영.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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