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열정·희망… 음악은 은퇴가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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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꿈꾸는 노원실버악단. 이들은 내달 초연을 앞두고 다시 열정을 담금질하고 있다. 사진은 전상은·오만곤·이철·조재호씨(왼쪽부터).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정적을 깨고 트럼펫 전주가 흐른다. 이윽고 기타와 드럼, 오르간 등 각종 악기들이 앞다퉈연주에 참여한다. 겉모습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소리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세월의 무게가 실린 음악에 중후함마저 흐른다. 노원실버악단이 드디어 그 나래를 폈다.

오디션 거쳐 단원 13명 최종 선발
 “명동에 왕성당구장이라고 있었어. 왕년에 음악깨나 한다는 사람은 여기 다 모였었지. 즉석에서 지방 공연단이 꾸려지거나 악단 하나가 뚝딱 만들어 졌어. 변변한 악보 하나도 없었지만 다들 어찌나 잘했는지 몰라.”

 초등 5학년 나이 때부터 트럼펫을 불었다는 조재호(69)씨가 시선을 과거로 던진다. 워낙 오랫동안 연주활동을 해왔던 터라 웬만한 음악사들은 줄줄이 꾀고 있는 그다. 이번에 노원실버악단에 뽑힌 13명의 단원들도 대부분 평소 ‘형님·아우’ 하던 사이란다.

 단장으로 뽑힌 오만곤(75)씨는 악단에서도 최고 실력자로 통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그 곡을 곧바로 악보로 그려낼 줄 아는 국내 몇 안되는 프로 악사다. 편곡이 전공인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뤄 악보 작업을 한다.

 지난 13일 열린 선발 오디션. 단장 후보로 최종 3명이 남았다. 그 중에는 국내 재즈편곡의 1인자로 일컬어지는 맹원식(74)씨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오씨를 보고는 단장직을 양보했다. “형님 있는 줄 몰랐네.” 그가 남긴 한마디는 노원실버악단의 자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수 ‘최헌’이나 ‘전영록’을 내가 직접 가르쳤더라고. 그 친구들이 나중에 유명해져서 고맙다고 찾아왔을 때 알았어.” 오씨가 기타강사로 몸담고 있던 세광출판 음악학원은 당시 국내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음악교육기관이었다.

 “악극단 시절이 좋았지. 기라성 같은 가수·연예인들과 함께 지방 유랑하던 시절이었어. 사기꾼에게 걸려 출연료 다 떼이고 야반도주하던 일도 비일비재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생음악을 들을 수 있었단 말이야.” 악단에서 드럼연주와 보컬을 맡는 이철(66)씨는 전자음악이 판을 치는 지금의 세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판에 박힌 음악 소리에 귀가 거슬리지만 세월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공연문화가 다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전자음이 섞이지 않은, 말 그대로 ‘생음악’에 대한 욕구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 위안이 된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 수습 기회
 이씨는 요즘 사회문제가 제대로 된 음악교육이 없는 탓이라고 말한다. “밴드부가 남아있는 학교가 있나? 그나마 있는 음악시간에도 다른 공부한다던데. 전인교육은 말로만 되는게 아니지.” 이씨는 손자들에게 기타로 직접 음악을 가르치고 있단다.

 노원실버악단은 다음달 말 초연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정식 명칭도 정하지 못했지만 악단 식구들은 앞으로 이어질 연주 활동에 어린 아이 마냥 가슴이 설렌다. 육군사관학교 악장을 마지막으로 35년 군악대 세월을 마감했다는 전상오(65)씨는“노원실버악단은 최고 실력자들이 모인 만큼 기대가 크다”며 “악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수습단원의 자격을 주고 함께 할 기회를 많이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문의= 02-950-3097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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