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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터뷰] 국립현대미술관 취임 한달 최만린 관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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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지하철과 버스에서 내려 미술관 입구까지 2.8㎞, 어른걸음으로 4천걸음이나 되는 이 진입로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긴 미술관 가는 길일 것이다.

너무 긴 진입로 때문에 수년간 비난을 들어온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12일부터 무료 서틀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서틀버스 운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0년 일시 운영) .하지만 지난달 18일 새로 취임한 최만린 (崔滿麟) 관장은 이를 '친절한 미술관' 으로 다가가기 위한 작은 변화로 봐주길 원하고 있다.

취임 이후 한달 남짓, 그는 자신의 관장실을 늘 활짝 열어놓고 지낸다.

미술관 직원들이 오가면서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훔쳐볼 여지 (?) 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친절한 미술관 만들기가 국민용이라면 '개방 (開房)' 은 미술관 행정의 투명성을 과시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안팎으로 기대가 많은 것 잘 압니다.

그러나 외국과 비교하는 상대평가의 대상이 되서는 곤란할 것 같습니다. " 흔히 '유럽은 어떻고 미국은 어떤데' 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과 비교하는데, 그것은 그네들이 오랫동안 가꿔온 결과이므로 우리와 단순비교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술관에 온지 얼마 안돼 벌써 미술관쪽으로 기운 얘기를 하는 것 아닌가에 대해 그는 "미술관 밖에 있을 때부터 제3자는 아니었다" 라고 답한다.

서울미대 조소과 교수이자 중진조각가로서, 미술관과 무관하지 않았고 때때로 여러 일에 자문역을 맡은 것도 상기시킨다.

"미술관은 그림 보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나온다.

"미술관은 쉬는 곳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술관을 들어서면서부터 심각한 표정이 되는데 그보다는 연인이,가족들이 데이트 약속을 하고 하루를 편히 쉬면서 즐기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미술관이라는 도식적 공간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정신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그 가운데서 삶을 풍부히 하는 그 무엇을 느끼는 곳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게 그의 바람이다.

관장 취임 3일째 되는 날 그는 관내 담당자에게 "휴게실 개선을 연구해보자" 고 했다.

일본의 미술잡지 '니케이아트' 9월호 특집은 '미술과 성찬' 이다.

'보이저' '푸른 혹성 버거' 같은 워싱턴 항공우주박물관 구내식당의 메뉴에서부터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찬 기사다.

아마 '청계산 정식' 이나 '백남준 찌개백반' 같은 것을 통해 친근한 미술관을 이루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현대.당대 그리고 미래까지 4대가 동거하는 다세대 미술관입니다.

물론 의견이 다르고 요구도 제각각이겠지만 한가족이란 생각으로 모두의 말을 잘 들어볼 생각입니다. "

부족한 여건에서 경청 이상의 답변이 없을지도 모른다.

기대를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한다.

"가능하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대미술관을 분가시키고 싶습니다.

또 별도의 분관 (分館) 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외진 장소.열악한 예산.미흡한 인력등 나쁜 조건으로만 둘러싸인 국립현대미술관이 변화를 보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의 임기중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절반은 뛰어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최관장의 리더십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미술인들의 이해와 상급기관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리란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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