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마을에 피어난 남녀의 사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2호 11면

“난 아주 보수적이거든! 남자는 남자를, 여자는 여자를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관객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이 대사는 뮤지컬 ‘자나 돈트(Zanna Don’t)’의 기발한 설정에서 나왔다. 무대 위에선 동성 간의 사랑이 정상이고 이성 간의 사랑은 변태가 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남남·여여 커플이 자연스럽고 남녀 커플은 금기시되는 마을 ‘하트빌’.

뮤지컬 ‘자나 돈트’, 3월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이 요상한 마을의 고등학교에는 남의 연애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다정한 마법 소년 ‘자나’가 있다. 학교 축제날 그와 친구들은 획기적인 소재의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기로 한다. 다름 아닌 ‘이성 간의 사랑을 허용하자’는 내용. 그런데 극중에서 서로 사랑하는 역할을 맡았던 남학생 스티브와 여학생 케이트가 실제로 사랑에 빠지자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나는 박해받는 이들의 사랑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새롭지만 위험한 마법을 써 보기로 하는데….

이성애와 동성애의 입장을 바꾸고 소수자가 다수자가 되는 가상의 마을을 그리면서 다수가 가진 편견을 깨고자 하는 뮤지컬 ‘자나 돈트’는 기발한 설정뿐 아니라 화려한 무대와 음악으로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의상과 소품의 알록달록한 색감과 튀는 스타일은 동성애자들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예술적 감각과 트렌드 세터로서의 성향을 암시한다. 사교력 강하고 매사에 잔정이 넘치는 주인공 소년 ‘자나’의 캐릭터도 동성애자에 대한 ‘긍정적’ 편견을 형상화했다.

꽃미남 배우들이 무더기로 등장해 선보이는 남자들끼리의 애정 장면마다 여성 관객들은 흡족한 탄성을 지른다. 그동안 남성 동성애를 다뤄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쓰릴 미’ ‘헤드윅’ ‘록키호러쇼’ 등도 그랬다. 다만 뮤지컬 ‘자나 돈트’에서는 스토리 전개상 여자끼리의 키스 장면이나 남녀의 키스 장면도 등장하는데, 그때는 객석에서 별 반응이 없다. 남성 동성애자(게이)를 애호하는 여성(패그해그) 소비 집단의 존재가 뚜렷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자나’는 “너희를 바꿀 수는 없어, 세상을 바꿀 거야”라는 노래와 함께 이성애가 허용되도록 하는 마법을 행한다. 그런데 그 마법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동성애를 혐오하고 패션 감각이 저하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대는 더 이상 컬러풀한 형형색색이 아니라 검은색 옷과 회색 배경으로 칙칙해진다. 그래도 자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행하는 일은 그 누구도 해칠 수 없어. 언젠가는 나를 받아들여 주겠지.” 문의 02-399-1111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