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일은행 부실채권정리 결정…부실은행 살리기 고육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부실은행 지원에 뜸을 들여왔던 정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공식적으로 나섰다.

당장은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통한 간접지원 정책을 앞세우고 있으나 한은특융 역시 시간문제로 보여진다.

부실채권 매입방법도 따지고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한은특융과 크게 다를바 없다.

결국 은행부실의 파장을 중앙은행의 발권력, 다시 말해 국민부담으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셈이다.

강경식 (姜慶植) 경제부총리는 "기아문제에 정부가 나서서도 안되고, 도와줄 방법도 없다" 면서 특융불가론을 거듭 밝혀왔다.

오히려 한국은행쪽에서 현실론을 내세워 특융불가피론을 폈었다.

그동안 정부가 부실은행 지원에 대해 소극적 내지 유보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과거와 달리 특혜성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는 원칙론이요, 둘째는 기아에 대한 지원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해외신용도 추락이 가시화되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16일 부총리.경제수석.한은총재의 3자회동은 세가지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물론 이 원칙은 앞으로 모든 금융기관에 적용되지만 우선은 제일은행을 염두에 둔 것이다.

첫째, 모든 지원에 앞서 제일은행의 강도높은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아에 대해 요구하는 강도높은 자구노력과 어느정도 수준을 맞춰야 시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제일은행에 환매채 (RP) 매매를 통해 유동성 부족을 지원하되 한은특융처럼 직접적인 자금지원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한 별도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즉 제일은행이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할 경우 한은특융을 포함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지원방안의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얘기다.

한편 성업공사내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통한 지원은 기왕 만들어 놓은 제도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기금을 통해 모든 은행들에 공통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병행하지 않은채 한은특융등 개별은행 지원만 강조할 수 없다는 속뜻도 담겨 있다.

기금설립과 관련된 법은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됐으며 오는 11월 설립된다.

그동안 기금의 재원마련이 문제였는데 저리 (低利) 의 한은융자로 상당부분을 채운다는게 정부의 복안이다.

일종의 '우회 한은특융' 인 셈이다.

이 기금이 제일은행과 협의해 부실채권을 사들이게 된다.

예컨대 제일은행에 1백억원의 부실채권이 있다고 치자.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감안해 기금이 50억원에 사들이면 제일은행은 급한대로 50억원의 현금이 들어오게 된다.

기금은 나중에 제3자에게 이 부동산을 60억원에 팔면 10억원 이익을 보고, 40억원에 팔면 10억원 손실을 본다.

이렇게 해서 돈을 모으면 한은에 갚는 방식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부실채권의 '해결사'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는 정부가 요청한 자문답신서를 통해 부실채권 정리기금 설립 자체에 반대의사를 밝혔었다.

차라리 해당은행들이 자기책임아래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고현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