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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영면] “당신의 가르침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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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일정과 장례 미사,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보면서 나는 경이에 빠졌다. 그동안 감춰졌던 그분의 개별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사랑이 하나 둘씩 커밍아웃하는 것을 목도하노라니 온후하고도 육중한 ‘큰 바위 얼굴’이 절로 그려진다. 종교와 지위 고하를 떠나 김 추기경으로부터 받은 감화를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저 40만 명, 아니 그 이상의 조문 행렬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어떤 인물을 목말라하는지를 웅변으로 시위했다. 그 염원의 화신을 적어도 필자는 김 추기경에게서 보았다.

김수환, 그는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김 스테파노, 그는 노상 고뇌하는 신앙인이었다.

사제 김수환 스테파노, 그는 천년 미래의 후배들도 닮고 싶어 할 선배였다.

김 추기경, 그는 20세기 조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인이었다.

그분은 민주화의 진통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던 1970년대 말, 명동성당에 우뚝 선 저항의 선봉이었다. 전 국민이 그의 단호한 예언의 외침 속에서 안전지대를 찾았다. 그의 미소를 바라보며 위로를 만났고, 그의 응시 속에서 미래를 발견했다. 약자와 강자의 불평등이 뚜렷했던 시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것이 당시 공학도였던 한 청년, 바로 나의 영혼을 사로잡았고 진로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분은 ‘민주화의 봄’이 찾아온 뒤 철저하게 국민통합과 화해를 위한 행보로 전환하신다. 정치는 철저히 정치인에게 맡길 때가 됐다고 보신 것이다. 말년의 김 추기경에게는 더 이상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었다. 오직 대한민국만 있었고, 한국인만 있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출극’이 온 세계에 폭로되었을 때 그의 눈물을 기억해 보라.

나는 확신한다. 우리는 한 ‘위대한 인간’을 잃은 것이 아니라 든든한 ‘수호천사’를 새로이 얻은 것이다. 그분은 지금 국민 통합을 넘어 민족의 통일과 대한민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하늘에서 빌어 주고 계실 터다.

고백하건대 나는 김 추기경의 은혜를 입은 또 한 사람의 숨겨진 수혜자다. 지난달 병상의 추기경께선 필자를 찾으셨다. 영적 독서거리를 요청하신 것이다. 필자가 썼던 책을 보내 드리며, 혹시라도 글을 읽기 힘드실까 봐 묵상 테이프도 함께 드렸다. 읽을 만하셨는지, 들을 만하셨는지…. 미욱한 필자는 송구스럽기만 할 따름이다. 

차동엽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차동엽(51) 신부는=1958년생으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에 들어가 91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로베르토.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수학하고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 가톨릭대 교수이며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 『무지개 원리』가 80만 부 이상 팔린 ‘스타 신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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