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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현 주일대사의 ‘부적절한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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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현 주일대사가 20일 부산시 덕포동 사상교회에서 장로 취임식에 참석해 서약을 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20일 오후 부산시 사상구 덕포동 사상교회에서는 권철현 주일대사의 장로 임직(취임)식이 열렸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남경필·이군현·이병석 의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등 정치인을 포함해 하객 500여 명이 몰렸다. 사전에 초청장까지 발송됐다. 서울 소망교회 장로인 이 전 부의장에게는 지난달 한·일의원연맹 행사 참석차 일본을 방문했을 때 직접 축사를 부탁해 승낙을 얻었다고 한다.

권 대사는 교회가 위치한 사상구에서 15대부터 내리 3선을 했다. 사상교회는 1995년부터 14년째 다닌다. 집사를 거쳐 지난해 장로 시험에 통과해 장로가 됐다. 이날 임직식 참석을 위해 권 대사는 외교통상부에 17일부터 5일간 휴가를 냈다.

그런데 이번 권 대사 귀국 행사에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뒷말이 많다.

권 대사는 식 직전에 지역의 구학초등학교 특별교실 개관식에 구청장·구의원들과 함께 참석해 축사를 했다고 한다. 귀국 직후인 18일부터 지역 인사들을 초청해 오찬·만찬 행사도 연달아 열었다. 그래서 장로 임직식도 개인 종교 행사라기보다는 대규모 정치 행사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이다.

권 대사의 귀국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21~27일에도 개인적 사유로 귀국해 청와대와 외교부 관계자를 만나고 돌아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일본대사를 그만두고 입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입각설이 돌기도 했다.

일본대사직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과거사 문제뿐 아니라 독도와 동해 표기 문제 등 한·일 관계에 수많은 불씨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기술하는 사건이 터져 권 대사 자신이 역대 일본대사 중 최장기간인 22일간 본국에 소환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와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의 현안도 산적해 있다. 부산 지역의 한나라당 한 의원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 일본 정·관계 인사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 바쁘게 뛰어야 할 대사가 정치인 복귀 준비만 하는 것처럼 보이면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기독교 신자로서 장로 취임은 영광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영광이다. 국민은 그것에 관심이 없다.

대신 경제위기 극복의 최일선에 선 대사가 본분에 매진해 주길 바랄 뿐이다. 적어도 대사 직함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말이다.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