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아파트 '애물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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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 중단 후 건축자재가 방치된 완주군 삼례읍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방치한 아파트 건설현장들이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8월 회사 부도로 공사를 하다 만 군산시 산북동의 대광아파트는 6년여 동안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익산시 여산면에 1200여 가구를 공급하려던 효중타워아파트도 3년 전 공정률 80%대에서 중단됐다.

15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내에서 97년 이후 공사가 중단된 공동주택은 23곳 6884가구에 이른다. 이들 아파트는 집을 나온 청소년들의 잠자리 등으로 악용되고 있다.

99년 2월 이후 방치된 완주군 삼례읍 읍내리 세일아파트의 3, 4, 6층 등의 안에서는 빈 부탄가스통과 본드가 묻어 있는 비닐봉지가 발견됐다. 비행 청소년들이 환각상태를 즐기기 위해 가스와 본드를 흡입한 흔적이다. 주민 오모(48.여.완주군 삼례읍)씨는 "밤만 되면 이 아파트에서 10대들의 싸움이 잦아 외출하기 두렵다"고 말했다.

5년째 공사가 중단된 완주군 이서면 상개리 상산아파트 내부에도 가출 청소년들이 잠을 잔 것으로 보이는 돗자리와 가스 버너, 빈 술병 등이 널려 있었다.

또 공사장 주변에 철근 등 건축자재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어 어린이들이 다치기 일쑤다.

실제로 김형규(11.완주 삼례초등 4년)군은 지난 3월 초 공사가 중단된 동네 아파트단지에서 놀다 벽돌이 무너지는 바람에 발등을 다쳤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사 중단 아파트단지엔 썩은 건축자재 등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어 파리.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심해 주민들이 무더운 날씨에도 문을 열어 놓지 못하고 있다.

박정수(56.여.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씨는 "방치한 아파트 건설현장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행정기관이 나서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 조사 결과 공사가 중단된 23개 아파트단지의 총 사업비는 2487억원으로, 개별 공정률을 감안할 때 이미 1000억원 이상 투입된 것으로 추정돼 장기간 방치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크다.

그러나 이들 아파트 건축주들은 열악한 재무구조를 가진 업체라서 국민주택기금을 융자받을 수 없는 데다, 건설경기 침체로 새로운 인수자가 없어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김한태 전북도 건축행정과장은 "공사 중단 아파트들이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도나 시.군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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