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여름밤의 꿈' 국경을 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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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연극 페스티벌인 폴란드 국제 연극제의 메인 프로그램에 국내 처음으로 초청받은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

극단 여행자의 연극 '한여름밤의 꿈'이 국내 처음으로 폴란드의 말타 국제연극제의 메인 프로그램에 진출한다. 말타 연극제는 지구촌 곳곳의 70개 단체에서 150여개 작품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연극 페스티벌이다. 말타 국제연극제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3시간가량 떨어진 포즈난에서 29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열린다. 연극제에서는 초청작들로 구성되는 '메인 프로그램'과 실험 연극을 위한 '오프 프로그램', 그리고 '레이크 포즈난'이란 제목으로 개별 공연들이 진행된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한국적인 색채와 유머로 각색한 '한여름밤의 꿈'은 30일~7월 2일(오후 11시) 모두 세 차례 무대에 올려진다.

연극계에서 스타일리스트로 통하는 연출가 양정웅(극단 여행자 대표)씨는 "메인 프로그램 참가작들은 해외 감독들과 시장 관계자들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되는 기회를 갖는다"며 "이번 연극제 참가는 작품에 대한 평가는 물론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을 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국내 연극 작품이 외국 시장에 '상품'으로 진출한 예는 없다.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선전하고 있는 '난타'도 넌버벌 퍼포먼스에 속한다.

뮤지컬 '명성황후'도 해외 시장에서 흑자를 내지는 못했다. 더구나 언어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연극은 국경을 넘기가 한결 어려운 장르다.

그런데도 양 대표는 연극을 통해 '세계적 감수성'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과 인도 등 동양적인 스타일에서 끌어낸 정서를 작품에 녹이는 시도 때문이다. 국내 일각에선 '한여름밤의 꿈'을 놓고 "일본적인 색채가 섞여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 공연에선 "너무도 한국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란 평가를 이끌어냈다.

양 대표는 굳이 한국적인 색깔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는 '스펀지'를 자처한다. 중국의 경극과 일본의 가부키, 인도의 탄드라 춤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미학적 이미지를 뽑아낸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감성을 중심에 세우고자 한다.

지난 3월 LG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극단 여행자의 '환'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극히 탐미주의적인 성향이었지만, 국제적 공감대를 얻으려는 연극적 모색은 인상적이었다.

양 대표는 "연극적 전통이 강한 동유럽이지만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느낌으로 승부를 걸겠다"며 "밤 11시 야외무대에서 횃불을 켜놓고 올라가는 무대가 '한여름밤의 꿈'과 절묘한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한여름밤의 꿈'은 9월 콜롬비아 마니살레스 축제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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