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2차 남북 정상회담 빨리 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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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4주년을 맞아 남과 북은 우발적 충돌 방지와 상호비방 중지 등 초보적 수준의 군사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국제사회의 갈등 등으로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개선노력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분명 남북관계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간에는 다양한 형태의 당국 간 대화를 지속하고 있으며 철도.도로를 연결하고 교류 협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비록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6.15 공동선언에서 남북 사이의 대립갈등을 화해협력.공존공영관계로 발전시킬 것을 약속한 것은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선언을 현실로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 변화여부 논쟁, 대북지원과 관련한 '퍼주기' 논란 등으로 '남북 화해시대의 남남 갈등'이란 역설이 형성되기도 했다. 북측도 미국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의 대북 강경정책 추진과 9.11 테러사태 이후의 정세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관계 진전에 심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실천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의 합의이행 의지와 함께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과 북한 고농축 핵개발(HEU) 의혹 제기 등으로 한반도에는 제2의 북핵위기 상황이 진행 중이다. 이에 연동돼 남북관계도 기존 합의사항 이행에 주력할 뿐 새로운 관계 진전을 모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고,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북.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

북핵문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남과 북이 군사회담과 경제회담을 잇따라 개최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긴장완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한.미.일 3국은 '대화와 압력의 병행전략'에 따라 북핵문제 해결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북.미 간 입장 차이로 북핵문제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현안 해결을 미루면서 북핵문제 해결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 정부로서는 6자회담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 핵문제 해결 노력을 지속하면서 남북 교류 협력과 긴장완화 노력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3600여명의 이라크전 차출과 1만2500명 추가 감축 논의 등과 관련해 제기되는 '안보 공백' 우려를 남북 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노력을 통해 해소해나가야 할 것이다.

화해협력.공존공영을 합의한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것은 북핵문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정전질서에 기초한 북.미 간 '교전관계'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무력충돌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현안인 북핵문제 해결, 주한미군 재배치 및 역할 변경과 관련한 남북한의 안보 불안감 해소 등과 함께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노력을 본격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와 남북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유보됐던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이른 시일 안에 개최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남북 간의 주요 현안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해결방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남북 정상회담의 정례화란 의미가 있으며,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촉진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 간의 첫 정상회담에서 6.15 공동선언에 서명함으로써 통일로 가는 청사진은 마련됐다. 앞으로는 합의 이후 실천 과정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 합의, 후 불이행'으로 점철해 왔던 과거의 악습을 버리고 합의사항을 반드시 이행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