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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적자금 규모 10조 안팎 … 급속한 기업 부실에 선제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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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을 사용키로 한 것은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의 부실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19일 구조조정 관련 브리핑에서 “지금 당장 금융회사나 기업이 공적자금을 써야 할 상황은 아니다”며 “그러나 (공적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앞으로 상황이 나빠질 것에 대비해 여유를 갖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자본금을 늘려 부실채권 매입에 속도를 내고, 각종 규제를 풀어 민간의 구조조정 펀드를 활성화하려는 것도 금융권과 기업의 부실이 늘어났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치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19일 금융위원회에서 구조조정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활한 공적자금=정부는 캠코에 구조조정기금을 설치해 기업의 부실채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 돈은 금융회사의 부실채권과 기업의 부실자산을 사들이는 데 사용된다.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동시에 촉진한다는 취지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7년 11월 23일 캠코에 만들어진 부실채권정리기금이 다시 생겨나는 셈이다. 진 위원장은 “법적 개념으론 구조조정기금을 공적자금으로 볼 순 없지만 넓은 의미의 공적자금엔 해당한다”고 말했다.

당시 캠코는 기금채권 발행, 부실채권 정리회수금 등을 포함해 39조2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장부가 기준으로 111조300억원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이 기금은 2012년까지 운영되지만 용도가 제한돼 있어 금융위가 별도의 기금 조성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금융위는 다음 달 중 관련 법 개정안을 마무리하고, 이르면 4월 말께 기금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 기금의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권혁세 금융위 사무처장은 “규모가 너무 크면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의 부실채권이 많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작게 만들면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며 “부실채권의 수요 조사를 통해 규모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초 금융위가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여유자금(약 5조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미뤄, 처음 조성되는 기금의 규모는 10조원 안팎이 될 공산이 크다.


◆구조조정펀드 활성화=정부는 민간이 부실채권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사모투자전문회사(PEF)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현재 PEF는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한 경우에만 설립이 허용되고 있는데, 이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또 산업은행은 이런 목적의 PEF를 다음 달 말께 10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 진 위원장은 “초기에 민간의 참여가 많지 않을 경우 국책은행이나 캠코가 종잣돈(시드머니)을 넣어 펀드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돼 온 부동산 관련 프로젝트 파이낸스(PF) 부실 대출을 사들이는 방안도 본격 추진된다. 캠코는 다음 달까지 1조3000억원 규모의 저축은행 PF 대출을 사들인다. 이어 4월부터는 은행의 부실 PF 대출 매입에 나선다. 또 캠코는 경기 상황을 봐가며 가계와 기업의 부실채권 매입도 고려하고 있다. 정부는 캠코의 부실 채권 인수 여력을 높이기 위해 6000억원인 캠코의 자본금을 3조원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와는 별도로 은행권 공동으로 부실채권 인수 회사(배드뱅크)를 만든다는 계획도 나왔다. ‘민영 캠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15일 금융당국과 은행장의 워크숍에 참석했던 은행 고위 관계자는 “배드뱅크 설립안을 회의에서 제안했다”며 “아직 아이디어 차원이긴 하지만 보유 채권을 현물 출자하거나 자본확충펀드를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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