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군인들 보살피기 30년 '할머니 나이팅게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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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심할머니(中)가 불우이웃에게 줄 김치를 담그고 있다. [논산=김방현 기자]

지난 10일 낮 12시 충남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 국군논산병원의 한 병실. 은발(銀髮)의 70대 할머니가 위경련으로 입원해 있는 권모(21)상병에게 자신이 직접 쑤어온 야채죽 한 그릇을 건넨다.

"아픈 데는 좀 어때? 빨리 나아야 할텐데…."

할머니의 따뜻한 위로에 심한 위경련으로 식사를 두끼나 걸렀던 권 상병은 힘을 내 숟가락을 든다.

대한적십자사 연무대봉사회 회원인 정윤심(72.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씨. '할머니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그는 올해로 30년째 이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정씨는 집에서 죽을 쑤어다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환자에게 먹이고, 환자가 사용하는 침구나 베갯잇을 수거해 세탁한다. 입원 장병들의 휴식 공간인 30평 남짓한 봉사실에 비치돼 있는 각종 교양서적(총 3000여권)의 훼손된 겉표지를 손질해 새 책처럼 만들어 놓고, 생일을 맞은 환자들에게 생일잔치를 열어주기도 한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1953년 결혼해 남편(96년 작고)의 고향인 논산에 정착한 정씨가 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데에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전쟁 고아들을 입양해 키웠으며, 오갈 데 없는 노숙자들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

그는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자연스럽게 봉사하는 마음을 배웠다"며 "그때부터 이웃과 고통과 행복을 나누며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75년 적십자사 연무봉사회에 가입했고, 다른 봉사대원들과 함께 국군논산병원을 찾아 환자들을 돌봤다. 지금까지 정씨의 손길을 거쳐간 국군논산병원 환자만 12만명에 이른다.

정씨의 봉사활동은 논산병원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2년 전부터는 논산 새마을부녀회원들과 함께 매달 두차례 혼자 사는 노인 및 소년소녀 가장들을 찾아 밑반찬을 만들어준다. 한달에 한번은 양로원을 찾아 노인들을 목욕시킨다. 이 일도 벌써 7년째 하고 있다.

봉사를 통해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는 정씨는 "남을 돕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조그마한 성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논산=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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