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타로 사망한 논산 훈련병 44년 만에“국가 배상”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1943년생인 고모씨는 65년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는 훈련 도중 선임하사 안모씨에게서 명치 부위를 발과 주먹으로 맞아 숨졌다. 하지만 중대장이던 대위 김모씨는 고씨의 유족에게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곤 고씨를 부대 인근에 가매장했다. 가해자인 안씨도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유족은 고씨가 군대 내 구타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 유족은 2005년 국방부에 고씨 사망에 대한 진실 규명과 시신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심장마비로 숨진 게 맞는 것 같다는 답변만 내놨다. 이에 유족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했다. 1년여 동안 의문사위 조사관이 현장을 수색하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은 결과 고씨가 구타로 숨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가해자 안씨도 자신의 잘못을 자백했다. 하지만 고씨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고씨 유족은 “국가 공무원의 불법 행위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이영동)는 “국가는 유족에게 9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는 소멸 시효 완성을 주장하나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국민의 생명을 침해한 뒤 그 증거를 은폐해 유족들로 하여금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를 할 수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유족이 뒤늦게 이를 알고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상황에서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