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자금 수수 혐의 정치인·공직자, 해명 못한 재산 가압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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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자금 수수 혐의가 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자신의 재산이 늘어난 정당한 사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압류당한다. 열린우리당이 다음달 중 국회에 제출할 '불법 자금 국고환수 특별법안' 내용이다.

해명하지 못한 증식 재산은 일단 불법 자금으로 간주해 법무부 장관이 의무적으로 가압류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불법 정치자금 수수나 뇌물 등의 혐의가 확정되더라도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혐의자가 재산을 은닉해 추징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할 이은영 의원은 15일 특히 "이 법은 정치인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선출직이나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로 한정하려던 적용 대상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이은영 의원은 또 "신속한 법 집행을 위해 불법 자금에 대한 형사재판과는 별개로 법무부 장관이 국가를 대리해 6개월 내에 민사소송을 제기토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송의 경우 선거법 위반 재판처럼 6개월 정도로 재판 시한을 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 같은 강제 환수 조치 외에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불법 자금을 받은 뒤 자발적으로 국고환수 절차를 밟는 방안도 포함될 것이라고 이 의원은 전했다.

강요를 받고 돈을 제공한 기업이 자진신고하면 책임을 묻지 않고, 불법 자금 수수 혐의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법안에는 정치인이 받은 불법자금이 정당으로 유입됐을 경우 정당 재산을 가압류하거나 국고보조금에 대한 강제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조항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위헌 소지를 없애기 위해 과거 불법 자금에 대한 소급 적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안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한변협 김갑배 법제이사는 "추징 등의 절차가 마련돼 있는 형사소송 외에 국가가 민사소송까지 제기한다는 것은 법리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불법자금이 유입된 정당에 대해 추징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개정 정치자금법에 정당에 대한 처벌 규정이 생긴 만큼 민사재판을 중복해 진행할 실질적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국가가 민사소송의 당사자로 나서야 할 필요성은 증대되고 있다"며 "입증이 어려운 뇌물죄의 경우 형사적으로 무죄가 나더라도 민사적으론 다른 판결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공직사회는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기존에도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등이 적용되고 있는데 또 다른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으려는 생각인 것 같다"고 반응했다.

김성탁.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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