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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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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은 지난 해 연말 인사고과에서도 J씨에게 좋은 평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업무 능력이 탁월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직원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재할 때를 제외하고는, 팀장인 내게도 말이 거의 하지 않는다.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그저 신통할 뿐이다.

‘방법이 없어, 방법이…’ 그녀가 결재를 받고 돌아설 때면, 언제나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이런 김 팀장에게 당신은 스스로 어떤 상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요?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놈 없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래요. 술 마시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죠. 한마디로 뒤끝 없는 남자. 쿨~한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원들요? 술 마실 때 분위기 한번 보세요. 계급장 떼고 화끈하게! 그러니까, 술자리에 빠지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월남에서’ 막 ‘돌아온’ 우리의 화끈하기 짝이 없는 얼굴 ‘새까만 김 상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자기 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되물었다. 당신은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라고 생각하느냐고? ‘글쎄요. 저 정도면 좋은 상사 아닌가요?’

자~ ‘상사’라는 계급장을 달고 사는 이 땅의 직장인들에게 묻노니, ‘당신은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인가?’ 양심 있는 상사는 이 질문에 머물 거릴 것이고, 양심 없는 상사는 뭐 그런 걸? 하고 날 째려 볼 것이다. 째려보지 말고, 바로 당신, 어떤 상사냐 말이야?!

우리의 김 상사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팀의 팀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우~ 게임을 해보자.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음성변조 했다 치고) 여자사원 X, "우리 팀장이요? 미친 술고래에요. 술 마시면요. 인사불성에다 주사까지. 아무나 어깨 껴안고. 뺨 비비고. 남자여자 모두 비벼대니까 성희롱 한다고 말도 할 수 없고. 에~효‘

남자사원 Y, "저 사실 술 안 좋아해요. 그런데 그 인간이 워낙 술을 좋아하는데다가 술 안 마시는 사람은 인간성이 별로라나 뭐라나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가능하면 참석하려고 하는 편이죠. 요 몇 주 동안은 구조조정설이 돌고 있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집사람도 이런 사정을 아니까, 별 말이 없어요. 그나마 다행이죠.‘

또 다른 여자사원 Z "아! J씨요? 처음부터 저희가 왕따 시키려고 한 건 아니에요. 팀장님이 워낙 싫어하시는 티를 팍팍 내고, 술 취하면 꼭 J씨에 대해 한마디 하고. 그러니까, 저희도 팀장님 눈 밖에 날까봐 J씨 하고 가까이 지내지 않을 뿐이져.“

Z까지 인터뷰를 했으니 더 없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의 인터뷰를 빼놓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문제의 J씨,

“(체질적으로) 저 술 마시면 죽어요. 술 취한 뒤의 술자리 분위기도 싫고요. 그런데 팀장님이 술을 좋아하시니까 가끔 참석해서 자리만 지켰죠.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기분 나쁘셨는지 절 대하는 태도가 여간 딱딱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최근에는 술자리 참석을 아예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른 팀원들도 절 멀리하는 것 같아서 우울해요. 빨리 다른 부서로 인사발령이 났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가 별명인 김 팀장에게는 차마 이 인터뷰우~ 내용을 전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에게, 중간관리자가 지키면 좋을 “7자 성어, 6대 원칙”이 적힌 쪽지를 조용히 건네줬을 뿐이다.

그리고 약간의 설명을 보탰다. ‘아부 경쟁이 벌어졌을 때 최종 해법은 뭔지 아십니까? 아부를 싫어하는 상사가 부임하면 끝입니다.’ ‘왕따가 이뤄지고 있을 때 해법은 뭔지 아십니까? 누군가 왕따 당하는 사람을 도와주면 되는데, 그 사람이 직속상사라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됩니다. 왕따를 주동하는 사람에게 경고를 주거나 인사고과에 반영할 것이란 점만 알려줘도 효과가 나타나곤 하죠.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왕따를 조장하는 상사가 의외로 많습디다.’

눈만 멀뚱멀뚱,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눈치였지만, 도와 달라는 요청도 없는 상황에서 인터뷰어가 너무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이쯤에서 멈췄다. 마음 같아서는 퍼억~ 명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7자 성어 6대 원칙’이 뭐냐고? 아래를 보시라! 안 보이는 사람은 ‘마음씨 나쁜’ 상사니 참고하기 바란다. 아래 그림이 눈에 보이는 ‘마음씨 착한 사람’ 상사들에게는, 그림 아래의 설명 내용도 보일 것이다.

첫째, ‘게임을 공개하라 : 심판자로서 역할.’ 팀 내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게임을 방조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공개하지 않는 사이, 게임은 더 치열한 양상으로 치달아 순식간에 당신의 손을 떠날 수도 있다. 중간관리자로서 혼자만 알고 있겠다는 생각, 어떻게든 팀 내에서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둘째, ‘이해를 이해하라 : 해석자로서 역할.’ 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이면에는 이해관계가 작용한다. 그 이해관계에 집중하라! 이해관계 따위는 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그러므로 갈등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캐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라. 의외로 많은 관리자들이 팀원들의 이해관계에 둔감하다.

셋째, ‘수위를 조절하라 : 조절자로서 역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겠다고? 헛된 꿈은 안 갖는 것이 좋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갈등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일 뿐이다. 나쁜 사내정치를 독감바이러스라 생각하고 증상만 완화시켜라. 그나마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데 감사하면서…

넷째, ‘균형을 유지하라 : 균형자로서 역할.’ 당신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균형이 깨진다. 술을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술이 대세가 되고, 등산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등산이 대세가 되는 것이다. 그 한마디에 술을 먹으면 죽는 자, 휴일만 애타게 기다리는 주말부부 사원은 소수자로 전락하면서, 왕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다섯째, ‘평정을 잃지마라 : 절제자로서 역할.’ 아마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을 것이다. 화도 자주 날 것이고. 화? 가끔은 내야 하겠지만, 화낼 때도 공정한 척 하라. 마음의 평정을 잃었더라도, 진짜 잃은 것처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로부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여섯째, ‘해법을 신뢰하라 : 해결사로서 역할.’ 모든 문제엔 해법이 있다. 팀 내 갈등의 해법에 몰입하라. 해법을 찾은 다음에는, 그 해법의 효과를 신뢰하라. 이 해법이 잘 안 먹히면, 저 해법을 찾으면 된다. 걱정 마라. 그리고 완벽한 해법은 없다는 점, 다시 한 번 기억해두자. 증상완화? 그 정도의 해법은 찾아질 테니, 구하면 얻을 것이란 뜻이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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