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레토' 들고 한국 오는 바리톤 레오 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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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이탈리아 파르마 왕립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된 ‘나부코’에 출연한 레오 누치(앞줄 오른쪽).

테너를 가리켜 흔히들 '성악의 꽃'이라고 말한다. 황금빛 고음(高音)이 빛을 발할 때는 눈부신 색깔과 짙은 향기를 내는 꽃이지만 바리톤에 비해선 음악적 수명이 짧은 편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떠오른다. 지난 3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68세까지 버틴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55세를 전후로 테너의 전성기가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주세페 디 스테파노는 53세 때, 프랑코 코렐리는 55세 때 은퇴를 선언했다. 이에 반해 바리톤은 60세를 넘겨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다. 티토 곱비(1915~84)는 64세,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79)는 67세에 무대를 떠났다. 호세 반담(63)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바리톤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레오 누치(62)는 요즘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올 시즌만 해도 밀라노.빈.볼로냐.취리히.베로나.뉴욕 등지에서 '나부코''자니 스키키''세비야의 이발사''리골레토''가면무도회'등에 출연한다. 2006년까지 연주 일정이 꽉 차있다. 도니제티.베르디 등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에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 탄력있는 고음 처리와 섬세하고 세련미 넘치는 발성을 자랑하는 가수다.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해도 객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무장한 연기파다.

이탈리아가 낳은 '오페라 영웅' 누치가 첫 내한공연을 한다. 7월 23~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볼로냐 오페라단 내한공연에서다. 누치에게 베르디의'리골레토'는 가장 자신있는 배역이자 출세작이다. 올해 볼로냐.베로나.취리히에서 이 작품을 선보인다. 그가 녹음에 참가한 30여장의 오페라 음반과 8장의 독집 앨범 중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한 '리골레토'(데카)가 가장 돋보인다. 96년 빈 슈타츠오퍼 정단원을 거쳐 올해 명예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누치는 한마디로 대기만성형 성악가다. 25세 때 스폴레토에서 데뷔한 뒤에도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6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목소리를 갈고 닦았다. 충분한 정신 수련도 거쳤다.

이번 공연은 누치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머지 출연진도 그에 못지않게 화려하다. 누치와 97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리골레토'로 호흡을 맞춘 소프라노 조수미(42.질다 역)씨의 첫 국내 오페라 무대다. 최근 유럽 무대에서 활동 중인 바리톤 고성현(44.한양대 교수)씨의 성숙해진 음악세계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만토바 공작 역으로 출연하는 테너 로베트토 사카는 고씨와 2001년 쾰른 오퍼에서 '리골레토'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 2002년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같은 역으로 출연했다. 테너 아킬레스 마카도(33)는 8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만토바 공작 역을 맡는다.

크로아티아 태생의 브예코슬라브 수테즈(53.자그레브 필하모닉 음악감독)가 서울시향을 지휘한다. 지휘의 거장 프랑코 페라라.세르지우 첼리비다케를 사사했으며 79~89년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예술감독, 90~93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음악감독, 92~97년 휴스턴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오페라 지휘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8월 레오 누치.아킬레스 마카도가 출연하는 베로나 페스티벌의 '리골레토'를 지휘할 예정이다. 무대 디자인.의상.출연진 모두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공연이다. 02-399-111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1942 이탈리아 볼로냐 출생

▶1967 스폴레토에서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로 데뷔

▶1973 베르첼리 비오티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 베르디'리골레토'로 데뷔

▶1996 빈 슈타츠오퍼 정단원

▶2000 이탈리아 유니세프 친선대사

▶2004 빈 슈타츠오퍼 명예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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