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차이나] 왕졘민의 ‘중미관계와 세계신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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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미 국무장관이 자신의 첫 아시아 순방을 앞둔 13일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중국의 고사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있을 때는 평화롭게 협력해서 강을 건너야 한다, “When you are in a common boat, you need to cross the river peacefully together.”)를 인용해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암시했다. [AP=연합뉴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한달을 맞아 미국의 '퍼스트 외교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는다.
왕졘민(王健民) 홍콩 톈다(天大)연구원 부원장의 칼럼 ‘중미관계와 세계신질서’가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는 연합조보(聯合早報) 17일자에 실렸다. 왕졘민은 이 칼럼에서 전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전지구 차원의 새로운 국제질서와 앞으로 진행될 중미 외교의 신국면을 다루고 있다. 아래는 칼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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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힐러리 국무장관은 13일 미국 아시아 소사이어티 강연에서 그의 첫 중국 방문을 앞두고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있을 때는 평화롭게 협력해서 강을 건너야 한다)’라는 중국 성어를 인용하여 미중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이는 워싱턴-베이징 사이에 30년에 걸친 관계 발전 후에 나온 말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 중국 정책을 표현하는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로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신호다.

힐러리가 밝힌 정책은 미국의 서브프라임이 촉발한 전세계 경제 위기라는 배경 아래서 나왔다.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의미는 단지 미국이 새롭게 취할 대 중국 정책을 나타낼 뿐 아니라 금융위기에 처한 워싱턴의 커다란 압력과 근심 및 미래 세계 정세에 대한 최신의 전략적 판단을 드러냈다. 이번 금융위기는 전세계에 도전과 동요를 가져왔다. 이와 동시에 세계 신질서라는 새로운 서광을 비추고 있다. 마치 케빈 러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말한 바와 같이 이번 위기는 “시대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당연히 중미 관계 발전에도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운명공동체’와 ‘G2 정상회담’

사실 워싱턴은 대중국 관계를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사전에 정세 파악을 마쳤다. 베이징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오바마 취임 이전인 1월12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미수교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미중 양국이 참여하는 ‘G2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양국 정상 사이에 정기적인 회담을 만들어 장차 양국 관계를 한 차원 격상시킬 것을 제안한 것이다. 주의할만한 사실은 브레진스키가 미국 대선 기간 동안 오바마의 외교분야 고문을 맡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제안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오바마에게 전달된 정보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
또한 이와 거의 동시에 미국 외교계의 또 다른 거물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미중 양국은 마땅히 일종의 ‘운명공동체(a common destiny)’ 구조를 만들어 양국 관계를 마치 2차 세계대전 이후 대서양 양안관계와 같은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글을 발표했다. 지정학의 대표적 인물인 키신저의 국제관계에 대한 새로운 구조에 대한 통찰과 각국의 역량 판단은 ‘창의적 외교’를 통한 국제 정치경제 질서 구상을 제출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힐러리 역시 ‘변혁 외교’라는 논리로 미국의 외교와 군사가 결합된 ‘스마트 파워’로 외교적 사유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키신저의 미래 국제신질서 구상은 미중 양국이 장래 국제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 공동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양국관계가 반드시 새로운 단계로 격상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양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이러한 구상을 실현해 양국이 “세계의 진보와 번영, 평화와 안정의 튼튼한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인식한다.
키신저가 제출한 ‘운명공동체’ 논리는 사실 힐러리의 ‘동주공제(同舟共濟)’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다. 이는 앞으로 중미관계의 발전이 대세이며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보나 현실적인 각도에서 보나, 공화당을 배경으로 하는 키신저나 민주당인 힐러리 모두 이점에서 역사의 커다란 조류를 따를 수 밖에 없다. 얼마전 오바마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면서 분명히 “미중관계는 장차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가 될 것”이라고 표명한 바 있다.

금융위기가 촉진한 외교 신구조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수교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미중관계가 이 정도로 발전할 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부단히 서로 충돌했지만, 시종 양국 관계의 큰 흐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중미간 무역액은 1979년 29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7년에 3021억 달러를 기록해 80배에 달하는 성장을 보여줬다. 미국은 이미 중국의 2대 무역 동반자이며 제1의 수출 시장, 여섯 번째 수입국, 3위의 기술 수입국가다. 중국 역시 미국의 3대 무역 동반자이며 4위의 수출 시장, 2위의 수입국가다. 30년 전 미국의 주중국 대사관의 외교관은 50명도 안됐지만 지금은 이미 1100명이 넘는다. 미국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외교관이 많이 파견된 대사관이 됐다. 이는 양국 관계 발전의 역사를 증명하는 한 측면으로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금융위기와 미국과 유럽, 일본의 동시 쇠퇴 국면을 맞이하여 브레진스키, 키신저, 오바마 정부는 모두 미중 양국이 더욱 긴밀하게 합작하고 협력해야만 이 곤란한 국면을 벗어날 수 있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고 있다. 키신저는 현존하는 국제질서는 이미 국제정치와 경제발전의 수요를 맞출 수 없으며 세계화 조건하의 경제는 이미 정치체제와 연관성을 잃었다고 강조한다. 미래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중국은 의심할 바 없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당초에 각자의 필요에 기초해 공동의 적을 견제하고 전략적 관계를 설정해 오늘날 이미 국제체제를 지탱하는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 ‘동주공제(同舟共濟)’하겠다는 구체적 구상을 나타낸다. 워싱턴은 국제정치경제 형세라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세계 각국의 역량은 한쪽은 줄어들고 한쪽은 성장했다. 미국은 이러한 객관적 현실에 대처할 수 밖에 없다. 2006년 중국 경제의 세계 경제에 대한 공헌도는 이미 14.5%로 상승해 미국의 22.8% 다음가는 위치에 올라섰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 알트만은 얼마전 글을 통해 미국이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년 전부터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이번 위기로 이 하락 추세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비해 중국의 실력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번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 가운데 구미 각국의 금융 기구가 도탄에 빠진 동안 중국은 오히려 남부러울 정도의 2조 달러에 달하는 외환 보유액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GDP 8.5%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25년에서 30년 이내에 중국의 GDP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 실력의 증강에 따라 중국의 전세계적인 영향력과 경쟁력 역시 상승하고 있다. 브레진스키의 ‘G2 정상회담’과 키신저의 ‘양대 지주론’은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미중 양국의 ‘동주공제(同舟共濟)’와 ‘운명공동체’ 건립은 나날이 심화되는 번잡한 세계적 차원의 난제를 제휴하여 처리하는 필수 조건이다. 이는 전세계 금융위기 아래 국제 외교의 새로운 국면이며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새로운 측면이다.

정리=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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