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산책] 중국의 훈수, 미국의 굴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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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30년 동안
연평균 9% 이상 고속 성장한 중국.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부 일각에선
언제나 '중국은 속으로 곪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가장 좋은 사례로
중국의 금융 부실 문제를 꼽으며 '시한 폭탄' 같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그 '시한 폭탄'의 나라에서 훈수가 나왔다.
중국의 부실 자산 처리 회사인
신다자산관리공사(Cinda Asset Management Corp) 총재
톈궈리(田國立)가 한 말씀 한 것이다.

요지는 미국과 유럽은 중국을 본 받아
부실 자산을 처리, 관리하는 bad banks를 설립을 서두르라는 이야기다.

신다를 포함해 중국에 만들어진
4개의 자산관리공사가 미국의 '정리신탁공사'(AMCs)를 모델로
만들어진게 1999년이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던가.
딱 10년 만에 중국과 미국의 입장이 완전 역전됐다.
그리고 그 '금융 후진국'이라던 중국의 훈수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세계 최고 권위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톈 총재의 '거룩한 말쌈'을 2월 18일자 1면에 '정중히' 모셨다.

한 마디로 미국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미국의 입장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 FT에 실리는 기사 논조를 보면,
아니 FT에서 보이는 미국 포함한 서방의 행태를 보면,
그 동안의 '중국 때리기'가 싹 사라졌다.

사라진 정도가 아니고 중국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양상이다.
지난 주말 로마에서 열린 G7 재무장관 회담이 분수령이 된 듯 하다.

'환율 조작국 중국' 같은 말은 자취를 감추고
'중국의 적극적인 내수 확대'를 환영한다는 등의 미사려구가 넘친다.

오는 4월 2일 런던에서 열릴 G20을 앞두고
분위기 잡기가 아니냐는 그럴듯한 해석도 나올만 하다.
18일자 FT엔 또 '지금은 중국을 공격할 때가 아니다'라는 칼럼도 실렸다.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중국 때리기' 보다 '중국 보듬기'가 보다 효과적이란 것을
서방이 뒤늦게 깨닫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이
'배 부르고 할 일도 없는 일부 외국인들이 중국에 감 놔라 밤 놔라'한다고
일갈한데 대해 놀라기라도 한 것일까.

서방의 확연한 태도 변화엔
지금까지 알려진 '중국과의 협력이 중요' 운운 외에도
필시 더 깊은 곡절이 있을 터, 계속 챙겨봐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

아무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20~22일 방중에서는 미중 관계에 긴장이 고조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은 중국을 자극할 때가 아니다'라는 전략적 인식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 전체에 퍼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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