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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합리적 보수, 책임있는 진보 협력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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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금은 단순한 경제난을 넘어 ‘국난(國難)’이라 불러 마땅한 국가적인 비상시국이다. 정부·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새로운 ‘나라 다스리기(거버넌스)’ 체계, 일종의 거국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대표적인 ‘진보 지성’ 백낙청(71·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현 시국을 ‘국난’으로 진단했다. 전세계 경제 위기는 오히려 표면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처럼 경제위기는 국민을 뭉치게 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가 현재까지는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백 교수는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낮은 것은 남 탓만 하는 대통령의 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낙청 교수가 18일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이목희) 초청으로 행한 특별 강연에서 나온 이야기다. 관훈클럽은 19일에는 작가 이문열(61)씨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목소리를 번갈아 들어보자는 취지다. 백 교수는 시민단체를 포함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과 북한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시민단체 좌우양극단 배제해야=진보세력 일부는 지난해 ‘촛불시위’를 정권퇴진 운동으로까지 연결시키려 했다. 백 교수는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보았다. 초 헌법적인 정권 교체는 삼가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그는 “하지만 다음 선거 때까지 꾹 참는 게 도리라는 주장도 극도의 무책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백 교수는 이날 “우리 사회의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 있는 진보가 협력해 폭넓은 중도세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의 중도적 양식과 정치권·관료사회의 책임 있는 역량이 결합하는 범 사회적 논의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해 백 교수는 좌와 우의 양 극단은 배제하자는 주장이다. 백 교수는 노무현 정부 하에서 출현한 뉴라이트 등 우파 시민단체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고 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이 되레 우파 보수 시민단체에게 거의 재앙이 됐다”며 “일부 세력이 정권의 ‘별동대’ 역할을 하는 등 보수 시민단체가 이론적으로 풍부해질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했다. 백 교수는 진보세력도 자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특히 민중운동에서 해 오던 분들이 기존의 타성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에 충분히 동의한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 경색, 묘안이 없다=백 교수는 바로 전날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임기를 마쳤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해 그는 “쉽게 풀 수 있는 묘안이 없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북한에 대해 도발적 발언을 많이 했는데 북한은 놀라울 정도로 참았다. 당시 북한이 왜 그랬는지,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작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향해 대화의 제스처를 쓰기 시작하자 공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또 백 교수는 “대통령이 자유 민주주의로 통일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미국 방문 중에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통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집중 비판 하는데 그래선 바뀌는 게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만 비판해서는 국민이 ‘친북 세력’이라고 생각하게 돼 설득력이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남북 문제 역시 정부의 일방적 정책이나 여·야의 정략에만 맡기지 말고 국민이 나서 달리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글=배노필 기자, 사진=연합뉴스

※내일(20일자)은 작가 이문열씨의 강연 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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