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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메이드 인 코리아 경유, 칠레 경제 돌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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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국과 칠레는 지구 정반대편에 있는 아주 먼 나라다. 이곳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송비가 많이 들어 경쟁력이 없다. 더구나 경유는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한 뒤 가공해서 재수출한다. 따라서 칠레에는 경유를 수출하기에 부적합한 상품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한국산 경유가 칠레 수출 상품 1위에 올랐을까?


바로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때문이다. 2004년 한국·칠레 간 FTA가 발효된 지 올해로 5년째. 칠레는 와인 수출로, 한국은 경유 수출로 양국 경제가 활기를 띠고 있다.

◆관세 없어져 경쟁력 확보=칠레는 원래 미국 등 인접국에서 경유를 수입했다. 이들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국산 경유와 운송비 경쟁력부터 상대가 안 됐다. 한국산은 수송비가 배럴당 6달러 정도였기 때문이다. 반면 인접국 업체들은 3달러 안팎에 불과했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보다 앞서 FTA를 체결해 관세 6%도 없었다. 2004년 한·칠레 간 FTA가 발효되면서 우리도 관세가 없어졌다. 특히 경유 제조시설을 확장한 한국 업체들은 미국 등에서 정제한 경유보다 훨씬 더 싸게 생산할 수 있었다. 칠레는 구리광산 등 산업시설용 경유의 수요가 급증했다. 자동차용 수요도 크게 늘었다. 에쓰오일·GS칼텍스 등 국내 정유 업체들이 “이 정도면 한번 해볼 만하다”며 칠레 수출에 발벗고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뢰와 기술력으로 뚫어=칠레는 국영회사인 ENAP와 민간회사인 COPEC 둘만이 경유를 수입한다. 이들은 주로 미국 업체들과 거래했다. 하지만 한·칠레 FTA 체결 이후 한국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병무 GS칼텍스 상무는 “미국이 허리케인 등의 영향으로 공급이 불규칙한 반면 한국은 생산시설 확충으로 안정적인 점을 인정했다”며 “또 칠레가 요구하는 경유의 비중(Density)을 맞출 수 있는 기술력도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경유는 비중이 높을수록 발열량이 좋은데, 칠레는 최소 0.83을 요구했다. 보통 다른 나라는 0.82를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 업체들은 이런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또 에쓰오일의 경우 아시아 지역 석유기준가격(MOPS) 대신 칠레가 쓰는 뉴욕상업거래소(NYMAX) 기준 가격으로 수출했다. 이 회사의 서효원 부장은 “아시아와 북·남미는 가격 차가 있어 손실을 볼 수도 있지만 신뢰 확보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칠레 간 FTA도 2007년 9월 발효돼 시장 선점 효과도 노린 것이다.

◆고도화 시설 투자도 한몫=한국이 산유국도 아니면서 경유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고도화 시설 때문이다. 이는 원유를 1차 정제한 뒤 남는 값싼 벙커C유를 다시 처리해 비싼 휘발유나 등유·경유로 바꾸는 설비다. 부가가치가 커 ‘지상유전’으로도 불린다. 현재 GS칼텍스는 하루 15만3000배럴, 에쓰오일은 14만8000배럴을 정제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특히 GS칼텍스는 하루 11만3000배럴의 벙커C유를 분해할 수 있는 고도화 시설을 2010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3조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이 회사의 고도화 비율은 22%에서 38.3%로 높아진다. 이윤삼 대한석유협회 상무는 “한국이 칠레에 경유를 대량 수출할 수 있었던 건 고도화 시설을 이용해 만들어 낸 경유가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도 50% 정도 남았기 때문”이라며 “신흥시장 국가들과 FTA를 체결하면 더 많은 수출 활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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