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없는 장애산악인 김홍빈씨 5,642m 엘부르스 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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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등산화끈이 풀어질 때 가장 난감하죠. 다시 묶을 손이 없잖아요, 하하. "

김홍빈 (金泓檳.34.광주시북구용봉동) 씨. 그는 양손이 없다.

지난 91년 북미 (北美) 최고봉 매킨리 (해발 6, 194m) 등반에 나섰다가 동상을 입어 잘라내야만 했다.

그런 그가 성한 산악인도 오르기 힘든 유럽 최고봉 러시아의 엘부르스 (5, 642m) 등반에 도전, 지난달 30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3일 귀국했다.

그는 정상 정복후 하산길 해발 4천6백m 지점부터는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물론 두 손이 없으므로 스틱은 쓸 수 없었다.

89년 겨울전국체전 스키 노르딕부문 금메달리스트, 86~91년 3위 이내 연속 입상등 장래가 촉망되는 스키어이자 산악인이었던 그에게 '양손 절단' 은 죽음보다 더한 절망이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별로 절망하지 않았어요. 절단 수술을 받은 알래스카 프로이던스병원에서 보낸 석달동안도 내내 웃고 지냈습니다.

병원측이 무일푼에 양손도 없는 사람이 웃고 사는게 불쌍했는지 치료비 1억5천만원을 받지 않더군요." 흔적만 남은 손가락틈 사이에 절반으로 부러뜨린 나무젓가락을 끼워 식사하는 그의 얼굴엔 어두운 기색이 없다.

95년에는 동계전국체전에 다시 도전, 스키 알파인부문 은메달을 따냈다.

"무엇보다 산이 좋아 산에 오릅니다.

혹시 제가 하는 일이 저같은 장애인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더욱 기쁜 일이죠. " 그는 유럽 최고봉 등반에 성공한데 이어 다음달에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5, 895m) 등반에 나선다.

그리고 올해안에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6, 959m) , 아시아 최고이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8, 848m) , 마지막으로 그의 두손을 빼앗아간 매킨리를 정복해 장애인으로선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 등반' 기록을 세울 작정이다.

93년 등산강습에 나갔다가 만난 부인 박옥련 (朴玉蓮.30.간호사) 씨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그는 "혹시 후원해줄 분이 생기면 정말 좋겠다" 고 수줍게 말했다.

광주 =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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