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문화유산]23. 풍물·탈놀이·강강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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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역사가 오랜 민족에게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게 마련이다.

문화유산 가운데 특히 소중한 것을 문화재라 하는데,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천연기념물로 그 대상을 잡는다.

이 가운데 무형문화재는 예능분야와 기능분야로 나뉘니 예능은 음악.무용.놀이.의식.무예, 기능은 다양한 공예기술.음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컨대,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유형문화재인데 그것을 만들어낸 기술인 대목장 (大木匠).제와장 (製瓦匠).단청장 (丹靑匠) 등은 무형문화재다.

이밖에도 지금은 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그밖의 갖가지 기능들이 숭례문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형문화재가 유형문화재를 만드는 셈인데, 모처럼의 '문화유산의 해' 에 이러한 무형문화재는 논의의 대상에서 다소 비켜가고 있는 것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각설 (却說) 하고….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3' 으로 선뜻 '풍물' 과 '탈놀이' 와 '강강술래' 가 떠오르는 것은 이것들이 어려운 세상을 극복하는데 있어 우리 조상님네가 더없는 역사적 슬기로 창출해낸 예술이자 놀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신명과 얼싸안음의 겨레음악 어쩌다보니 본디의 이름인 풍물보다는 농악으로 통하고 있다.

그런데 이 농악이란 호칭은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에 그들에 의하여 붙여지면서 보편화된 것이다.

농사짓는 농사꾼들의 음악이란 뜻으로 은연중 비하하는 것이기도 하다.

표준어권인 중부에서는 '풍물' , 호남에서는 '풍장' , 영남에서는 '풍물' 또는 '매구' 로 지금도 서민대중들은 부르고 있는데 오히려 배운자임을 자처하는 계층이나 특히 관 (官)에서 '농악' 을 고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풍물은 홀로가 아닌 무리가 어울려 창출하는 '일음악' (노동음악) 이자 '길군악' (행진곡) 이었는데, 요즘은 특히 '사물놀이' 란 이름으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환락음악으로 변질되고 있음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풍물의 철학' 을 남사당패 상쇠였던 최성구옹은 이렇게 설파하셨다.

"…꽹가리 그건 사람으로 치면 팔뚝의 맥과 같은 것이니 그것이 끊어지면 다 없는 것 아니겠어?

또 징이란 가슴의 고동, 심장소리지. 북은 목줄기에 선 굵은 핏대구, 이 셋은 함께 어울리기도 하지만 제 길을 가기도 하지. 그러나 이 셋을 살림 잘 하는 마누라처럼 북편 채편 (장고의 양면) 을 잘 도드락거려 하나로 얽어놓은 것이 장고란 말이여. 하늘과 땅, 음과 양, 그러니까 만물이 이루어진 이치와 꼭 같은 것이지. 이 이치를 요즘 사람들은 몰라주고 있어…" 풍물 가운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진주 삼천포농악.평택농악.이리농악.강릉농악.임실 필봉농악 등으로 역시 '농악' 이란 이름의 일제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올 '문화유산의 해' 가 가기 전에 떼어버려야 할 생채기라 하겠다.

*** 우리 연극의 기둥으로 재창조 어울림과 신명과 얼싸안음의 겨레음악인 풍물이 뒤늦게나마 각박해져 가는 산업사회의 세상풍조를 바로잡는데 한몫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풍물을 '농악' 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탈놀이보다는 '가면극' 으로 알려져 있는 우리의 소중한 연극유산 탈놀이는 지역에 따라 '탈놀음' '탈춤' '탈굿' 으로도 불리운다.

우리 겨레의 애환을 탈이란 전형화된 얼굴들을 통하여 극으로 꾸며내는 탈놀이는 고장마다 전승되었던 것인데 지금은 14종이 중요문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강령탈춤.은율탈춤.양주별산대놀이.송파산대놀이.강릉관노탈놀이.하회별신굿탈놀이.고성오광대.통영오광대.가산오광대.수영들놀음.동래들놀음.남사당덧뵈기 등이다.

그러나 이밖에도 풍물에서의 '잡색놀이' 라 하는 탈놀이들과 '놀이굿' 에서의 탈놀이들도 다시금 살펴져야 할 연극유산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남사당덧뵈기의 짜임새를 통하여 우리 탈놀이의 성격을 규명해 보자. 남사당의 연로한 연회자들은 노는 순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마당씻이 하고…' '옴탈잡고…' '샌님잡고…' '먹중잡고…' '어울려 뒷풀이를 한다…' '마당씻이' 란 놀이판을 확보하기 위한 앞놀이요, '옴탈잡이' 는 옴탈이란 못된 외적 모순 (外勢) 과의 싸움이며, '샌님잡이' 는 내적 모순과의 대결이요, '먹중잡이' 는 타락한 사이비종교의 비판이며, '뒷풀이' 는 보는 자와 노는 자가 함께 어울려 놀이판을 마무리하는 순서다.

이것은 남사당 탈놀이 '덧뵈기' 인데 실은 우리나라 탈놀이가 지니고 있는 공통된 성격이기도 하다.

독창적이며 전형화된 탈과 재담과 발림 (몸짓.연기) 으로 이루어내는 탈놀이들은 지난 시대의 유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로 재창조되면서 우리 연극의 기둥이자 대들보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하리라. 규모있고 내용이 실한 '뭇동춤' (집단무용) 인 강강술래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무용분야가 아닌 놀이분야로 분류되고 있다.

노래하고 춤추며 돌고도는… 물론 무용보다 놀이가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강강술래가 지니는 악 (樂).가 (歌).무 (舞) 의 총합적 성격이 우리의 전통예술의 골격이라면 바로 '강강술래' 가 그 보기의 좋은 예라는 생각에서이다.

서양예술을 보는 잣대로 우리의 전통예술을 분별할 때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되기에 말이다.

손에 손을 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돌고 돌아가는 이 '뭇동춤' 은 놀이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서 울퉁불퉁한 밭이랑 위에서 한 사람의 엉킴도 없이 물흐르듯이 돌아간다.

풍물도 탈놀이도 강강술래도 하나같이 큰 가슴으로 얼싸안으며 꽃피는 음악이요, 연극이요, 춤이자 놀이다.

끝으로 자랑스런 유산은 조상으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 닦아나가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것은 물려받는 동시에 부단히 재창조하여 내일로 전승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임을 특히 '문화유산의 해' 에 다짐하고자 한다.

심우성 [공주민속극박물관장.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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