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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가 새물결] 커지는 은행가 고용불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에서 제일 행복한 명예퇴직자 - . 협성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강의하는 이대호 (56) 교수를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지난해 12월 상업은행 부장을 끝으로 명예퇴직자 대열에 합류한 이씨는 올들어 교수로 변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물론 李씨는 최근 8개월동안 명퇴한 2천7백61명의 은행원중 가장 성공한 경우다.

운도 좋았지만 주경야독 (晝耕夜讀) , 직장에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부지런함을 보였기에 살길 찾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 명퇴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결같이 '옛날이 좋았다' 는 반응이다.

안정된 직장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은행에서 명퇴등 고용불안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과연 국내 금융기관들이 선진 경영기법으로 무장한 외국 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면서 은행들이 하나둘씩 '군살' 제거 작업에 나섰다.

더욱이 대기업의 잇단 부도로 금융계가 부실여신을 대거 떠안게 되자 감량 한파가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은 명퇴도 앞으로 금융계가 직면할 변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은행들의 인사정책도 많이 독해졌다.

아직 연공서열 원칙을 뒤엎는 수준은 아니지만 '철 밥그릇' 이란 말이 유행하던 과거와는 딴판이다.

우선 들수 있는 것이 조직 슬림화 바람이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본부 직원의 20~30%를 감축하고 이들을 영업점에 배치, 야전군으로 삼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인력감축이 쉽지 않으므로 당분간 신입 행원을 뽑지 않거나 대폭 축소하면서 버텨보겠다는 은행들도 적지 않다.

은행에서 후보자로 찍은 (?

) 직원이 명퇴를 신청하지 않을 경우 휴직명령, 승급 정지, 한직발령등의 수단을 동원 강제 명퇴를 유도했다는 말도 들린다.

해외연수등 교육기회도 젊고 능력있는 직원들의 몫이다.

S은행 중견 직원은 "옛날에는 직원들에게 교육기회를 줄때 서열이 감안됐는데 이제는 투자효과만을 따지는 것 같다" 고 볼멘소리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가 근본적인 은행 내부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도 노조에서는 이같은 인사정책이 근로조건의 악화로 이어지는것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인원 감축만이 정답이냐는 반문도 나오고 있다.

직원들의 사기와 직장 만족도 저하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고, 80년대 후반 미국 기업에서 불필요한 인원이나 부서를 찾아 이를 없애는 경영 기법이 유행했지만 효과는 대단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사정책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대전제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진듯 하다.

LG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이인형 (李寅炯) 박사는 "은행들이 인사정책을 포함 경영합리화를 신속히 추진하지 않으면 인원감축이 아니라 대량 실직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 이라 경고한다.

기업이 살아야 종업원이 살수 있다는 것이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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