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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쓰시타정경숙 학생들 한국서 노동체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떠오른 몇개의 상념 - 혼미를 거듭하는 대권다툼. 비틀거리는 기업들. 고속전철의 부실공사 소식. 안양 박달고가도로의 균열사고. 반대편에선 여전히 잘 나가는 일본. 지난해 하시모토 내각 재집권. 행정.금융분야의 잇따른 개혁 드라이브. 기술경쟁력을 근간으로 한 기업경영의 탄력성.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일 뿐인가.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일본의 교육기관인 마쓰시타 세이케이주쿠 (松下 政經塾) 의 학생 5명. 이시카와 다케히로 (石川 武洋).아비코 히로마사 (我孫子 洋昌).모리모토 신지 (森本 眞治).기시카와 겐고 (岸川 健吾) , 그리고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 외무장관을 꿈꾸는 야이타 아키오 (矢板 明夫) . 그들은 지난달 8일부터 29일까지 3주간 대우그룹 계열사인 대구의 대우기전과 구미의 오리온전기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날씨 속에서. 일본 내에서도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있는 그들이기에 다소 의아스럽다.

생면부지의 한국에 와서 그런 노동체험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정경숙의 연수담당인 구아하타 겐야가 국제전화로 한 말. "일본을 알기 전에 주변 국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간접체험보다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깨닫는 게 효과적이다.

" 연수가 끝나가는 무렵 교육현장에서 그들을 만났다.

대구에 있는 달성공단내 대우기전 공장. 일부 공정에선 냉방이 안돼 후텁지근한 열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자동차 에어컨용 컴프레서 부품을 만드는 공정에서 작업복을 걸친 야이타는 쏟아지는 땀을 훔치랴 일하랴 정신이 없어 보였다.

노동의 대가? 대답은 간단했다.

"보고 이해하는 것과 해서 이해하는 것의 차이를 알았다.

" 물론 옆에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숙련공 한명이 딸려 있다.

손놀리는 솜씨가 어때요? '사수' 는 "너무 열심" 이란다.

그러면서 궁금한게 있다며 대신 물어봐 달라는데… "이 친구 로봇이냐" 고. 자신은 작업시간 중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열번은 자리를 뜨는데 그는 한번 자리를 뜰까말까란다.

'이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한번 가는 것도 잘못이다.

진짜 일본 사람이라면 한번도 안갈 것이다.

" 덧붙이기를 "한국 사람은 공장 밖이나 안에서 모두 인간적이지만 일본인은 밖에서는 인간일지 몰라도 안에서는 기계" 란다.

다른 공정에 있는 이시카와. 그는 "옆에서 도와줘 어렵지 않게 일한다" 고 먼저 감사를 표한다.

그러면서 한마디. "제품 만드는데 정성이 부족한 것 같다.

일본은 물건을 통해 자신의 자부심을 표현한다.

열심히 일한 결과가 제품이고 손님이 그 물건을 쓰며 기뻐할 것을 생각하면서 열과 성을 다한다.

" 대부분 초행인 그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인정많다, 적극적이다" 등이다.

흠을 잡아보라고 하자 잠시 머뭇거린다.

"교통질서가 엉망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너무 크다.

하천정비등 사회기반시설이 잘 안돼 있다.

생산성과 국민소득에 비해 임금이 너무 높다.

" 연수기간중 재계 8위인 기아그룹은 벼랑에 섰다.

비교적 잘 돌아가는 대우기전.오리온전기의 임금협상은 6%대에서 타결됐다.

밖에서는 쪼그라든다고 걱정들인데 여전히 대범한 우리들. 회복불능의 중병 (重病) 진단이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자에게 어김없이 불행은 닥칠진저. 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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