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신체차이 연구…'性생물학'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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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여성의 폐는 담배 연기에 대해 남성보다 더욱 예민하다.

▶여성은 마취 후에 남성보다 훨씬 빨리 의식을 되찾는다.

▶여성은 남성보다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더 강하다.

체내 면역글로블린 (항체) 수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여성 심장은 남자보다 더 빨리 뛴다.

잠자는 동안의 박동수는 더욱 차이가 난다.

하지만 평균적인 크기는 남성 것의 3분의 2에 지나지 않는다.

▶관상동맥 (심장에 산소와 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에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쌓이기 시작하는 연령은 남성이 여성보다 10년 정도 더 빠르다.

이 때문에 혈관이 막히든지 혈관벽이 약해져서 생기는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위험은 남자에게 높다.

하지만 여성은 폐경 이후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확률이 이전의 4배로 높아진다.

▶완전히 성숙했을 때 여자는 남자보다 뼈무게가 덜 나간다.

▶아스피린.알콜.리도카인 (국소마취제).아세트아미노펜 (해열진통제).벤조디아제핀 (신경안정제) 등 몇가지 약은 남자와 여자의 몸안에서 각기 다르게 대사된다.

그 결과 약의 작용강도.작용시간.배설속도도 당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나 전신성 홍반성 루프스 등 신체의 면역기능이 과다하거나 외부 침입물질이 아닌 자기 몸에 대해 작용하는 바람에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의 대부분은 여성에게서 더욱 많이 나타난다.

남녀는 단순히 생식기 구조만 다른 게 아니라 심장.두뇌.뼈.피부.침 등 장기.부속물.분비물에서도 뚜렷한 생물학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최근의 연구들은 남녀가 세포단위에서 시작해 모든 장기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많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미국 여의사회장을 지냈고 현재 미국 코넬의대 교수인 라일라 월리스 박사는 최근에 밝혀진 남자와 여자 사이의 몇가지 다른 점들을 위와 같이 들고 있다.

사실 여성과 남성이 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의학적 연구 결과 남녀간의 생물학적인 차이가 이전에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성에 따른 신체의 기능.작용.반응의 차이를 특별히 연구하는 신학문인 성 (性) 생물학 (gender - specific biology) 이 최근 등장했다.

성차이라는 문화적 관점에서 시작된 이 학문은 최근 의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으로 성에 따른 생리기능.약물반응.치료결과의 차이와 그 메카니즘까지 밝힌다면 의학 교과서의 상당 부분을 새로 써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의학적 치료체계의 대규모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임상실험을 새로 해야 하고 보건정책도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

제약업계를 비롯한 의료산업 전체가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여성건강원장이자 심장혈관학자인 매리언 레가토 박사는 다른 장기에 비해 심장은 남녀차이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연구와 일반인 대상 교육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그는 같은 심장약이라도 남녀에 따라 치료효과와 부작용 정도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예를 들면 어떤 부정맥 치료제를 사용했을 때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비율이 여성에게 더욱 높은 경우도 있었다.

또 아스피린은 고혈압 남성의 심장마비를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자에게는 효력이 남자만큼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성건강원의 마이클 로젠 부원장은 "이제는 심장병 환자의 성에 따라 서로 다른 치료법을 설계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발빠르게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한 기업도 벌써 나타났다.

미국의 파키 데이비스 제약사는 성에 따른 몸의 약물반응 차이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이미 가동시키고 있다.

한 질병이 남녀에게 각각 어떻게 다른 형태로 침범하는지, 왜 어떤 병은 한 성에게만 나타나는지에 대한 해답을 밝히는 것이 이 연구의 주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 국립보건원은 최근 야심찬 여성건강연구에 착수했다.

'여성의 건강주도권' 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15년에 걸쳐 6억2천8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여기에는 폐경기 여성의 심장병과 골다공증, 그리고 유방암 등을 막기 위한 유용한 임상실험법을 개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8세에서 12세 사이의 여성 10만명에 대한 관찰연구, 50세에서 79세에 이르는 폐경기 여성 6만4천5백명에 대한 임상실험, 그리고 한 지역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건강습관을 조사하는 지역사회 예방의학 연구를 수행한다.

이러한 성생물학의 각광과는 대조적으로 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던 과거의 의학 연구.실험 관행이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예를 들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임상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지원한 사람의 3분의 2는 남자였다.

그럼에도 그 결과가 여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리라고 태연히 믿어왔다.

때문에 오랜 임상실험을 통해 효능과 안전성이 확보됐다는 판정을 받은 약품이라 하더라도 성에 따른 작용이나 독성 차이로 인해 여성에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연구자들에게 여성들을 배제시켜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임상실험 대상자에 여성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의무화했다.

미국의학협회는 최근 들어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연구와 남녀 모두를 포함하는 의학연구에 지원을 늘이고 있다.

협회는 "대부분 남자로만 수행된 의학적인 임상연구는 그것이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에는 일반화해 적용할 수 없다" 고 선언한 바 있다.

게다가 성생물학 연구는 여성의 평균수명이 더 긴 이유를 밝힘으로써 인간의 장수와 건강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성생물학이 만들어낸 이같은 자연과학 분야의 움직임과 함께 성의 사회의학적 부분도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남녀와 관련된 문화.사회적 상황을 의사와 환자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분야는 산업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환자의 심리적 안정감과 치료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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