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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읽는다] ‘BEYOND CHINA’ 대청제국서 배우는 경영 노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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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제국 1616~1789 』
이시바시 다카오 지음, 홍성구 옮김, 336p, 15,000원, 휴머니스트

여기 두 편의 TV 광고가 있다.
광고 내내 ‘BEYOND CARD’와 ‘See The Unseen'이라는 영문 슬로건이 반복된다.
귀가에 맴맴거리고 입에서 쉽게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곡조에 메세지가 실린다.

최근 번역 출판된 ‘100만의 만주족은 어떻게 1억의 한족을 지배하였을까?’라는 부제의 『대청제국 1616~1789』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광고다.

‘중국을 넘어선 중국’, ‘누구도 못 보던 중국’을 『대청제국 1616~1789』이 보여준다는 의미다.

청(淸, 1616~1911)나라. 수 천년 계속된 황제 전제지배의 왕조국가, 만주족이 세운 이민족의 나라, 아편전쟁 이후 서구의 침략에 유린당한 왕조 등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 책은 기존의 한족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러한 청조 역사 서술에 반기를 든다. 만주어 사료에 입각해 만주족의 입장에서 청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특히 청의 전반기, 즉 누르하치의 거병에서 만(滿, 만주족)-한(漢, 한족)-번(藩, 몽골, 위구르, 티베트)을 아우르는 세계제국의 형성까지 만주족의 ‘몸집불리기’ 과정을 6단계로 나눠 분석한다. 저자의 할아버지인 이시바시 우시오[石橋丑雄], 아버지인 이시바시 히데오[石橋秀雄]를 이어 3대째 만주사와 청조사를 전공하는 청조사 전문가 이시바시 다카오(石橋崇雄, 58)는 청조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즉 한족사회와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 전통적 전제왕조와 부족사회와 유목사회에 기반을 둔 원(元)조를 잇는 정복왕조의 모습을 함께 고려할 때 청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논리다.

…… → 강한(强漢) → 성당(盛唐) → …… → 대원(大元) → 대명(大明) → 대청(大淸)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역사 흐름에서 ‘대청제국’은 단순한 중국의 왕조국가를 넘어서는 '비욘드 중국' 즉 중국을 넘어선 세계제국으로서의 중국이었다. 칭기스한을 이어 쿠빌라이가 세운 대원국이 한족 사회 통합에 실패하여 100년도 지속하지 못했던것에 비해 청조 268년 치세는 한족의 중국과 번(藩, 몽골, 위구르, 티베트)을 아우른 중국사상 최대 제국의 황금기였던 것이다.
저자의 서문을 빌려 표현한다면 청조는 “동아시아와 북아시아를 아우르는 대규모 ‘화이(華夷)의 통합’을 독자적으로 실현하여 현대 중국에까지 직접 연결되는 복합다민족국가로서의 기반을 형성”한 업적을 남겼다.

화이질서를 넘어서 유럽 세계와 대결하는 일대 세계제국을 이룩한 대청제국은 ‘포스트 아메리카’시대에 새롭게 ‘책임있는 강국’으로 굴기하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원형’을 제공한다. 원(몽고족)→명(한족)→청(만주족)→중화인민공화국(한족)으로 세계제국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다.

누르하치의 거병에서 건륭제의 제국 수립까지는 다국적 거대 기업의 탄생 과정과 쉽게 매칭된다. 16세에 결혼할 당시 남자 6명, 여자 5명, 말 2필, 소 4두 만을 가지고 시작한 누르하치는 건주여진을 통합하고, 해서여진과 내몽골 칼카부족의 연합군의 공격을 격파하며 만주의 다크호스로 등장한다. 그는 몽고족들을 비롯해 유목사회에서 ‘한(汗)’의 칭호를 받으며 만주국 단계를 넘어 아이신국(後金)까지 수립한다. 이 과정은 한 기업이 마치 구멍가게로 시작해 경쟁업체를 철저한 경쟁으로 물리치고 상권을 재패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 단계에서 만주문자와 팔기제도를 확립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갖춘다. 이제 내수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준비를 마친 것이다. 몽골과 조선을 아우르며 후방을 평정한 뒤 메인 마켓인 중국 내지로 진격한다. 때마침 입관도 어렵지 않았다.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자결했고 이자성과 청의 대군 사이에 끼어있던 오삼계가 청에 투항함으로써 손쉽게 중국을 접수한다. 무혈입성이요 적대적 M&A를 피 한방울 안 묻히고 이뤄낸 셈이다. 입관 직후 청은 한족들에게 머리를 깎게하는 치발령을 내림으로써 만만치 않은 점령자임을 분명히 한다. 반란의 기운을 애초에 도려낸 것이다. 이후 강희, 옹정, 건륭제로 이어지며 황제제도를 완비하고, 무력과 인문을 병용하며 제국 지배의 시스템을 완비한다. 이 모습이 마치 한 기업의 세계 시장 재패 과정과 같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위기의 시대다. 최근 한 언론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기업 총수들이 고전에 침잠한다고 한다. 위기의 돌파구는 기본으로 돌아갈 때 보이기 때문이란다. 대청제국의 성립과정은 이런 면에서 좋은 교과서다. 이시바시의 이 책을 눈여겨 봐야할 이유다.

중국에서 청대의 역사를 다시 서술하는 청사공정을 펼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한족이 보는 청나라의 공식 역사(正史)가 나오는 것이다. 만주어 사료에 입각해 청사를 재조명하는 이른바 ‘신청사’ 학파의 해석이 얼마나 녹아들어갈지 궁금하다. 굴기를 꿈꾸는 그들의 대청제국에 대한 ‘해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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