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시평] 우리도 화성탐사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의 패스파인더에 의한 성공적인 화성탐사는 전세계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면서, 오랫동안 인류의 관심사였던 외계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시시각각 보내오는 각종 자료는 화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주고 있으며, 혹시 지구 밖의 생명체에 대한 최초의 증거를 제시해줄지 모른다 하여 전세계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이렇게 전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번 패스파인더의 화성탐사는 철저히 미국인 위주의 축제다.

화성착륙 날짜도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추었고,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진보와 탐구정신의 새로운 이정표" 라고 선언하면서 미국의 막강한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과 문화대국주의를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그러기에 화성착륙 보도와 함께 국내 언론들이 제기한 "우리나라는 언제나 화성탐사가 가능할까" 라는 질문은 국내과학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왜 우리는 화성탐사를 할 수 없을까. 물론 그 해답은 우리나라 과학기술력의 부족이다.

패스파인더의 화성착륙 며칠후 국내에서 시도한 중형과학로켓 실험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사례는 두 나라 우주항공기술의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주항공기술은 기계공학.전자제어.통신.물리학.재료공학.화학등 여러 분야가 결합된 종합기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격차는 어느 한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적인 과학기술의 저변이 취약함을 나타낸다.

이같은 실상은 연구개발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부족하고, 이공계 대학교육이 부실한 현실의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과학기술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있어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투자의 확대만으로 우리가 곧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확대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이 인식의 전환이다.

가령 패스파인더를 개발한 핵심과학자들이 모두 한국에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이들이 화성탐사의 개가를 이뤄냈을까를 자문해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첫째로 당장 돈이 되지 않는 화성탐사 같은 일에는 누구도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번 패스파인더의 개발에 소요된 비용은 우리나라 무궁화위성의 발사비용보다 적다.

그러나 인간 호기심의 충족이라는 과학연구의 문화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경제성만으로 연구의 필요성을 평가하는 우리 풍토에서는 연구비 지원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당장 대가가 보이지 않더라도 인류의 지적 자산으로서 가치가 인정되는 연구에는 투자할 때가 됐다.

너무나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연구개발 투자 태도는 과거 일본과 같이 '기초연구 무임승차론' 의 비난을 자초할 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미래원천기술의 개발 기회를 놓칠 위험성이 있다.

둘째는 전문가가 자기 분야에 오랫동안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패스파인더 계획의 총책임자인 도너 셜리 박사는 30여년간 연구원 생활의 대부분을 화성탐사와 관련된 연구로 보냈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과학기술정책이 바뀌고 얼마 안되는 연구비를 얻기 위해 자기 전공분야가 아닌 곳에도 기웃거려야 하는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미국과, 여러 분야를 적당히 아는 반 (半) 전문가를 양산하는 우리나라가 첨단기술로 경쟁했을 때 누가 이길지는 명약관화하다.

셋째는 연구개발비에서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다.

이번 화성탐사는 20여년전의 바이킹호에 비해 비용이 10분의2도 들지 않았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섰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과거 남의 기술 모방이 연구개발의 주목적이었던 시절의 관습이 남아 아직도 연구개발에서 실패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독창적 연구란 원래 실패 가능성이 많은 법이다.

이 점을 이해하고 위험을 무릅쓴 창조적인 연구를 복돋워 주어야만 진정한 기술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모든 문제점보다 몇배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시민의 이해와 격려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이해가 필요하다.

오세정,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