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차이나] CC-TV 부속건물 화재와 중국 인터넷의 현주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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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이었던 지난 9일 밤 중국 베이징시 ‘둥싼환루(東三環路)’ 부근에 신축 중이던 중국중앙방송(CC-TV) 부속건물에 화재가 발생해 159m 높이의 44층 건물이 전소됐다.
이번 대형 화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2009년 벽두에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로도 충격적인 뉴스다. 또한 뉴스 이면에 오늘날 중국 인터넷의 현실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특히 ▶엄격한 인터넷 통제 ▶인터넷 뉴스 보도의 ‘선진성’ ▶’발찍한’ 네티즌의 존재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차이나 워처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신화사 제공 뉴스만 게재하라”=화재가 발생한 9일 밤 중국의 ‘인터넷 위법 불량 정보 신고 센터(互聯網違法和不良信息擧報中心, 2004년6월10일 성립된 인터넷 감독 기구로 주소는 http://net.china.com.cn)’는 중국 중요 포털 사이트에 ‘일급(一級)’ 통지를 하달했다. 각 사이트에 오직 국영 통신사인 신화사에서 제공되는 뉴스만 게재하고 해설 보도를 금지하도록 한 것이다. "모두 조화(和諧)를 위한 조치"라는 이유도 곁들였다.

CC-TV 부속건물 화재 발생 직후 중국의 일부 주요 사이트들은 화급히 특집 페이지를 제작하고 네티즌들이 시시각각 전해오는 현장 소식을 싣기도 했다. 하지만 당국은 각 대형 사이트에 ‘일급’ 통지를 내려 각 사이트는 ‘오직 신화사에서 송고하는 기사만 사용하고, 사진·동영상은 게재하지 말며, 해설 보도를 금하며, 국내 뉴스란에 사건 소식을 올리고,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조치하며, 전체 기사란에 올리되 토론방과 블로그 상단에 게재하지 말고, 추천도 못하게 할 것’을 요구했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명보(明報)가 보도했다.

홍콩의 중국인권민운정보센터는 각 대형 포털들이 이 통지를 받은 후 특집 보도 페이지를 없애고 네티즌들의 현장 보도를 멈췄으며 사진 동영상도 바로 삭제했다고 밝혔다. 중국 인터넷에서 ‘일급’ 통지는 통지를 받은 후 5분 내에 통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리감독 당국 또한 통지를 내린 후 계속해서 사이트와 통화해 민감한 내용의 삭제를 요구하는 조치로 알려져있다.

이번 화재 사건은 최근 인터넷 음란물 단속을 이유로 엄격해진 중국 당국의 인터넷 통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계기가 됐다.

◇인터넷 뉴스 보도의 새로운 형식 선보여=한편 중국 국무원 소속 신화통신사에서 운영하는 신화망(www.news.cn)의 화재 사건 보도는 세계 유수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못지 않은 뛰어난 표현 수준을 보여줬다.

일단 속보처리는 낙제점을 받았다. 신화망은 CC-TV 부속건물 화재 사건을 사건 발생 4시간 46분이 지난 10일 새벽 1시13분12초에 첫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 제목은 ‘중앙방송국 신축 건설현장 대형화재 발생, 류치, 류윈산 등 현장 진화 복구 지휘’(http://news.xinhuanet.com/newscenter/2009-02/10/content_10791094.htm , 사진)였다.

신화망은 이 기사 페이지를 통해 화재 사건 현장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계속 추가하면서 일목요연하게 정제된 현장의 소식을 전했다. 필자 판단에 이 페이지는 전세계 유수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개별 기사 화면들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선진적인 포맷으로 평가받을만 하다.

우선 기사 앞에 ‘본 사이트의 (사건) 전 과정 보도’라는 소제목을 붙이고 그 바로 아래 풀다운(Pull down) 메뉴로 ‘제1페이지: 중앙방송국 신축 건설현장 대형화재 발생, 류치, 류윈산 등 현장 진화 복구 지휘’, ‘제2페이지: 화재 현황 보도’, ‘제3페이지: 화재 현장 목격’, ‘제4페이지: 원인 초보 조사’, ‘제5페이지: 피해 정도와 구조 조치 현황’의 형식으로 사건과 관련해 궁금증을 느낄 만한 모든 기사의 제목을 보여주고 개별 기사 페이지로 이동이 가능하게 배려했다. 풀다운 메뉴 아래에는 사건 핵심 사진을 올려 비주얼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1일 저녁 확인 했을때는 베이징 소방국 부국장 뤄위안(駱原)의 10일 사건 관련 기자 회견 사진이 올라있었다.

그 아래에는 불릿(■) 제목 ‘중앙방송국 신축 건설현장 대형화재’을 달고 사건 관련 스트레이트 기사의 첫 문장을 노출한 뒤에 같은 불릿을 놓고 관련 최신 뉴스 세 꼭지를 노출시켰다. 그 아래 화염에 휩싸인 건물 사진을 보여 준 뒤 동영상 화면을 노출하고 그 아래 관련 뉴스를 위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줬다. 즉, 불릿+제목+리드문+전문보기 링크 식으로 “류치, 류윈산, 궈진룽 등 신속히 현장에 달려와 진화 작업 지휘”, “베이징시 당위원회, 시정부 응급 예방조치 시작, 현장 지휘 센터 설치”, “16개 중대, 소방차 54대 현장 출동”, “전문가: 현장은 바람이 약해 기본적으로 화재 더 번지지 못해”라는 기사 네 꼭지와 리드문장을 노출 시켰다.
그 아래에는 기사 상단과 마찬가지로 풀다운메뉴와 함께 1,2,3,4,5 숫자와 추가 기사로의 이동을 편리하게 유도했다.

단, 기사 아래에 다른 기사와 달리 댓글 달기 기능은 덧붙이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개별 기사 처리 방식은 짧은 화면 안에서 독자가 사건의 핵심 스트레이트 기사를 파악하고 자세한 내용의 기사로 이동을 편리하게 돕는 ‘이용자 친화적’인 서비스 방식이다.
이는 한국은 물론 구미권 뉴스 사이트에서도 보기 힘든 신선한 인터넷 기사 전달 방식이다.

올해 1월1일부터 신화망과 인민망은 첫 화면을 개편했다. 중국 뉴스 포털의 특징은 첫 화면의 기사 대량 노출이다. 따라서 세로 폭이 길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개편된 첫 화면을 보면 초창기의 ‘투박함’은 사라지고 세련된 느낌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 당시 신화망의 실시간 보도는 인터넷 뉴스 보도의 새로운 장을 보여준 바 있다.(관련 기사: 베이징 올림픽은 사상 첫 인터넷 올림픽)

특히 이번 화재 사건 보도의 뉴스를 공급한 신화망의 보도 형식은 중국 인터넷의 한계와 함께 ‘가능성’도 함께 보여줬다.

◇’손오공’들의 반란=2007년 10월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창립기념 포럼에 참석한 추리번(邱立本) 홍콩 아주주간 편집장은 중국의 정치 현실을 '화단(花旦)정치'와 '손오공 사회'로 비유했다. 항상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누비는 경극(京劇)의 여자 주인공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억9800만명에 이르는 중국 네티즌들이 소설 서유기에서 천궁을 활보하고 돌진하는 손오공이 서로 맞서는 형국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번 화재 사건에서 중국의 ‘손오공’들은 유감없이 존재감을 보여줬다.

일명 ‘CC-TV UCC 놀이’를 통해서다. ‘CC-TV UCC 놀이’는 CC-TV화재 현장의 사진을 포토샵을 통해 영화 사진과 합성해 풍자한 것이다. (관련 기사: 중국 네티즌, CC-TV 화재사진 포토샵 놀이 열풍 )
이뿐만 아니라 당국의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 네티즌들은 화재 사건과 관련된 소식들을 네티즌 특유의 ‘집단지성’을 통해 한데 모으는 작업도 진행했다.(관련 인터넷 페이지: https://docs.google.com/View?docid=dggh5mp6_0cmqqrrdb )

CC-TV 부속건물 화재는 중국 주요도시의 단일 화재 규모로는 최대 규모였다. 비록 인명피해는 사망 1명 부상 7명으로 예상보다 적었으나 무형적인 충격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동시에 중국 인터넷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광저우에서 발행되는 석간 양성만보(羊城晩報)는 10일자 신문 1면 머리기사에는 ‘CC-TV 위법 불꽃 놀이가 대형 화재 초래’를 싣고 바로 아래 관련 사진은 한국 화왕산 억새 태우기 화재 참사 사진을 크게 싣는 편집을 선보였다. '국내 뉴스는 좋은 것만 보도하고 나쁜 것은 보도하지 않으며, 국제 뉴스는 나쁜 것만 보도하고 좋은 것은 보도하지 않는 다'는 중국 매체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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