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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존엄사 후속 조치에 만전 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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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존엄사를 처음으로 인정했던 1심 판결에 이어 항소심에선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4개의 원칙까지 제시했다. 일단 의료계 안팎에선 보편적 기준이 마련돼 혼란이 줄어들게 된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라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적용하기엔 이들 원칙에 아직 모호한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예컨대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망 과정에 진입했어야 한다’는 기준만 봐도 ‘사망 과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국내에선 심장사를 죽음으로 규정하며, 뇌사는 장기 기증자에 한해서만 인정한다. 더욱이 이번 재판의 계기가 된 환자 김모씨처럼 뇌사에 가까운 식물인간의 경우 극히 드물게 회생 가능성이 있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또한 ‘환자에게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 중단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기준 역시 좀 더 구체적인 세부 지침이 필요하다. 김씨만 해도 생전에 가족들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던 걸 토대로 본인 의사를 추정했을 뿐이다. 혼선을 막으려면 외국처럼 환자 본인이 심폐 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등의 사용 여부에 대해 미리 서면으로 의사를 밝혀둔다든지, 보호자 중 대리인을 지정해 유사시 결정을 위임토록 하는 등의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을 명시해 ‘존엄사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마침 이번 법원 판결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재판부도 절차와 방식, 남용에 대한 처벌과 대책 등을 규정한 입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다만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할 때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된다고 본다. 입법 추진에 앞서 각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을 찾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구성해 병원 내 위원회가 1차적으로 판단한 내용을 심의하게 하자는 대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고령화 추세에 따라 존엄사 문제에 직면하는 국민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법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정부와 국회가 나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