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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중앙일보 '남기고…' '구름의 역사' 끝낸 작가 한운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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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작가 한운사(82)씨는 최근 넉달간의 긴 여행을 마쳤다. 자신의 청춘, 드라마.시나리오 작가로서 화려했던 시절, 그리고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구름의 역사'의 연재가 지난 9일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씨는'아로운전''이 생명 다하도록''남과 북' 등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영화'빨간 마후라'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의 작품 연보와 그에 얽힌 사연은 1950~80년대 한국 대중문화 역사의 축약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신성일씨를 발탁한 것도, 임권택.신상옥.유현목 감독과 작업하며 한국 영화의 장르를 넓혀간 것도 그였다.

순수문학 쪽에서도 업적은 많다. 한국일보 문화부장 재직 시절 그는 대학생 이어령이 쓴, 기존 문단을 통렬하게 비판한 '우상의 파괴'라는 글을 전격 게재했다.

한씨가 쓴 '아로운전'은 일본어로도 번역됐다. 한.일 과거사를 다룬 그의 존재는 한국과 일본 작가의 교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위해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는 한씨는 "처음에는 '내가 과연 쓸 수 있을까'의심이 갔지만 어느 순간 의욕에 넘쳐 새로운 피가 흐르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연재가 시작되자 '현대사를 쓰고 있다'는 과분한 찬사가 들려왔다"며 "현대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그런 말은 부담스러웠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현대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일본 주오(中央)대학에 다닐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고, 한국전쟁 때는 북의 체제를 체험하겠다고 서울에 남았다가 죽을 뻔한 위기도 맞았다. 또 '이 생명 다하도록''남과 북''잘 돼갑니다'라는 작품 때문에 정보부에게 끌려가 조사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작가생활 50년을 따져보니 별 걸 쓰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 진전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연재 때 못다한 이야기는 책으로 출간하면서 보충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만 넷을 두었다. 아버지에게서 예술적 향취를 맡아서인지, 사업을 하는 3남을 제외하고는 예술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장남은 건축가 한만원씨, 차남은 의상 디자이너'돌리앙 한', 막내는 기타리스트 한상원씨다.

한씨는 한때 폐결핵을 심하게 앓았다. 그러나 술.담배는 여전히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우리 몸은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글=홍수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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